'영원한 리베로'의 책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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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리베로'의 책임감
  • 야동말고 축동
  • 발행 2014.07.15
  • 조회수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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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감독이 사퇴했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의 사퇴가 옳지 못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조건적인 유임이 답이 아니듯 무조건적인 사퇴도 답이 아니었다. 협회와 홍 감독 그리고 여론은 더 신중했어야 했다(제일 신중했어야 했던 것은 도를 넘어서 비판을 한 언론이다). 플랜 B, 차선책 따위는 없다. "일단은 사퇴하고 보자!", "일단은 사퇴시키고 보자!"라는 식의 무조건적인 사퇴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처사다.



 


 

홍 감독의 계약기간은 왜 아시안컵까지?


홍명보 감독은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한 채 사퇴했다. 만약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기준에 부합하는 성적을 냈다면 아시안컵이 열리기 전에 홍 감독의 계약기간은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로 연장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월드컵에서의 결과는 참혹했고 홍 감독은 참혹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퇴를 결심했다.?사퇴와 동시에 홍 감독은 자신의 지도력을 다시 검증받을 수 있는 하나의 대회를 놓쳤다. 이 대목이 너무 아쉽다.


감독을 결정할 때마다 여론과 언론은 항상 협회에 '월드컵을 위한 장기적인 플랜'을 요구해왔다. 나는 협회가 홍 감독을 선임할 때 여론과 언론이 원하는 '장기적인 플랜'을 위해 홍 감독을 선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협회가 이 부분만큼은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홍 감독이 사퇴한 지금, 협회가 '장기적인 플랜'으로 홍 감독을 선임했다는 내 생각과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그래도 나는 아직도 그 때의 협회의 선택은 '장기적인 플랜'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장기적인 플랜'이 아니었다면 2006년 독일 월드컵 때처럼 10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단기간에 성적을 낼 수 있는 검증된 지도자, 당시에 아드보카트 감독을 선임했던 것처럼 미래보다는 바로 눈 앞에 있는 대회에 집중할 수 있는 감독을 앉혔어야 한다. 애초에 협회는 축구팬들이 원하는 '장기적인 플랜'을 가지고 두 개의 대회에서 홍 감독의 지도력을 평가하고 여론과 언론으로부터 평가 받기를 원했을 것이다. 사실 협회의 의도는 두 개의 대회가 끝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이번 월드컵은 홍 감독의 지도력을 검증할 수 있는 대회가 아니라 홍 감독의 운을 실험하는 무대였다. 히딩크나 무링요가 와도 월드컵까지 1년도 안남은 시점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을 이끌고 16강, 8강에 안착시키기는 힘들다. 그동안 여러 메이저 대회에서 맹위를 떨쳤던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이번 월드컵 성적을 봐도 알 수 있듯이 16강, 8강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외국에서 보는 한국 축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강하지 않다. 유럽에서 명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자케로니는 일본 대표팀을 4년 동안 맡아 월드컵을 준비했지만 우리보다 못한 성적을 냈다.


홍 감독의 지도력을 검증받을 수 있는 현실적인 무대는 아시안컵이었다. 아시안컵의 우승 여부가 홍 감독의 계약 연장과 사퇴를 결정할 수 있는 잣대가 됐어야 한다. 홍 감독을 흔드는 시점은 아시안컵 이후였어야 한다. 아시안컵마저 실패하고 깔끔하게 사퇴했다면 아쉬움은 덜 했을 것이다. 이제 막 고등학교 2학년이 된 학생에게 수능을 보게 하고 진로를 결정하게 만든 꼴이 됐다. 그 학생은 고2 수준에 맞는 모의고사를 보지도 못한 채 대학 입시를 포기해 버렸다. 처음부터 수능을 보게 하지 말던가 아니면 수능에서의 경험을 다음 수능에서 써먹을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대학 입시를 포기한 그 고2학생은 중학교 시절 화려한 성적을 자랑했다..).


 

 

결국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홍명보 감독이 지도력을 검증받을 대회가 있건 말건, 그의 계약기간이 아시안컵까지였던 사실도 상관없이 결국은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셈이 됐다.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실패가 홍 감독이 더 이상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들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같은 시시콜콜한 말들은 더 이상 대한민국 축구계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한 번의 기회에서 얻은 성공 혹은 실패로 나누어지는 결과가 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단 한 번의 기회에서 성공하는 사람만이 성공적인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사람으로 평가된다. 홍 감독이 월드컵에서 성공하기 위해 해왔던 수고는 '16강 실패'라는 결과에 가로막혀 헛수고가 돼버렸다. 한 번의 '실패'가 이토록 무서운 것인지 홍 감독의 사퇴로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결과론적 얘기지만, 홍 감독이 대표팀을 월드컵 16강에만 올려놓았어도 '인맥 축구'는 '신뢰 축구', '믿음 축구'로 바뀔 수 있었으며 '땅 매입 논란'은 '대한민국 축구 16강, 그 와중에 땅 구입' 정도의 작은 논란으로 비춰질 수 있었다. 물론 16강 진출 이후의 대표팀 회식은 선수들의 수고를 치하하는 파티가 됐을 것이다.


 

 

책임 - 홍명보(feat. 허정무)


 



 

브라질 월드컵 실패의 모든 책임은 홍명보 감독에게 돌아갔다(허정무 부회장의 사퇴는 일종의 피처링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끝까지 책임을 지는 홍 감독의 모습이 멋지기는 커녕 이 사퇴가 누구를 위한 사퇴인지 모르겠다. 홍 감독을 사퇴로 몰아가면서 협회는 책임을 회피하는 모양새다. 협회는 '장기적인 플랜'을 위해 홍 감독을 선임했다면 끝까지 홍 감독을 여론과 언론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보호했어야 한다. 적어도 아시안컵까지는 홍 감독이 대표팀을 이끌 수 있게 했어야 하는게 협회의 책임이었다. 여론과 언론에 휘둘린건 홍 감독이 아니라 대한축구협회다. 사퇴가 능사가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홍 감독이 사퇴할 수 밖에 없게 만든 가장 큰 책임은 대한축구협회에 있다.


기술위원회와 축구협회의 윗자리에 앉아있는 분들이 홍 감독 대신 큰 책임을 지고 여론과 언론의 질타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한다. 홍명보와 허정무라는 작은 가지를 쳐내면서 대한축구협회라는 큰 뿌리는 살렸지만, 썩은 뿌리를 뽑는 개혁이 없다면 새로운 대표팀 감독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현재로서 홍 감독의 책임감 있는 사퇴는 한국 축구에 이로운 것이 하나도 없다.


 

 

+ 아시안컵은 어떻게?


 

2007113122426 1960년 아시안컵 우승 후 찍은 대표팀 사진.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가장 최근 아시안컵 우승이다.
<사진 출처 -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

 

대한민국은 54년 동안 아시안컵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반면 일본은 54년 동안 네 번의 우승을 하고 16년 간 아시아 챔피언으로 지냈다. 전쟁 중인 이라크도 2007년에 아시안컵을 들어올렸고, 아시아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호주는 아시안컵을 개최하며 아시아 챔피언 자리를 노리고 있다.


아시안컵은 아시아 대륙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축구 국가 대항전이다. 이영표 해설위원의 말대로 월드컵은 경험하는 대회가 아니다. 아시안컵 또한 경험하는 대회가 아니라 성과를 내야 하는 대회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6개월도 남지 않은 대회를 맡고 이끌어 갈 감독조차 선임하지 못했다. 초심이 아니라 처음으로 돌아가 버렸다. 코칭 스태프 선임, 선수 선발, 팀 운영 등 대표팀의 모든 것들이 리셋된 상태다.


현재 대한민국 축구에게 가장 간절한 것은 아시안컵이다. 아시아 최강이라는 자존심을 찾아 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성과, 즉 우승을 통해 축구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다시금 대한민국 축구를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축구가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구심점을 아시안컵에서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의 현실은 아시안컵에 나갈 감독도 선수도 정해져 있지 않다.?박지성의 국가대표로서 마지막 목표였던 아시안컵 우승이라는 꿈을 10년 뒤에 손흥민이 똑같이 꾸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현기증이 난다.


 

 

'영원한 리베로'의 아쉬운 책임감


홍명보 감독의 사퇴는 아시안컵 이후에 논의됐어야 한다. 언론과 여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사퇴로써만 책임을 지는 홍 감독의 결정이 아쉽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올라갔듯이 홍 감독은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대한민국 축구를 아시안컵까지 지고 갔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책임감이다. 리더로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도 책임감이지만 책임을 가지고 끝까지 가는 것이 더 큰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성적부진과 갖가지의 논란을 용서하고 곱게 보자는 것이 아니다. 홍 감독이 더 큰 책임감을 행하지 못했고, 행할 수 없게 만든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보았던 필드 위의 '영원한 리베로'의 책임감은 물러나는 것이 아닌 실패의 책임, 논란의 책임을 다 업고 대한민국 축구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다.


 

 

written by 고강민

ko12014 야축 특파원

축구를 떠드는 시크한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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