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를 돌아다니며 쓰레기 봉지를 팔던 꼬마.
훗날 20세 나이로 청년이 되던 해 갑자기 축구를 접하게 됐다.
축구를 시작하기엔 너무도 늦은 나이.
당연히 프로팀이 아닌 동네 아마추어 축구팀 마토넨시에 소속돼 축구를 즐겼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청년에겐 축구에 재능이 있었다.
동료들 중 발군의 실력을 과시하며 스카우터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그 결과 상파울루 주 지역 리그 페로비아리아에 스카우트 되며 본격적인 축구 인생을 시작했다.
이 청년의 이름은 그라피테.
페로비아리아에서 산타크루즈로 이적한 뒤 잠재력을 드러냈다.
그러자 브라질 1부리그 팀 그레미우가 그라피테 영입을 결정했다.
축구를 시작하고 불과 2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하지만 프로의 벽은 높아도 너무 높았다.
개막전부터 무릎 부상을 입고 6경기에서 무득점에 그쳤다.
결국 팀에서 방출됐지만 여기까지도 충분히 인생 역전이라 할 만했다.
은퇴를 고려하던 순간 K리그 팀 안양LG가 그라피테에게 마지막 손길을 내밀었다.
2003년, 24세 나이로 '바티스타'라는 등록명과 함께 낯선 한국 땅 도전에 나선 그라피테.
하지만 그라피테에게 한국은 너무도 낯설었다.
이번에도 9경기를 뛰었으나 적응하지 못하며 브라질로 쓸쓸히 돌아갔다.
다행히 그라피테의 기량을 눈여겨본 팀이 이번에도 있었다.
고이아스가 그라피테와 자유 계약을 체결하며 기회를 줬다.
여기서 실패하면 사실상 끝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라피테는 앞선 실패를 발판 삼아 다시 한 번 이를 악물었다.
놀랍게도 고이아스에서 그라피테는 다시 태어났다.
사실상 리그를 평정하며 브라질 명문 구단 상파울로 입단에 성공했다.
여기서도 그라피테는 데뷔 시즌부터 17골로 상파울루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그 뿐 아니라 FIFA 클럽 월드컵, 코파 리베르타도레스까지 우승하며 3관왕에 올랐다.
이제부터 그라피테의 시선은 브라질 안을 넘어 유럽 무대로 향했다.
2006년, 프랑스 르망FC가 그라피테에게 러브콜을 보내며 유럽 도전에 나섰다.
그라피테가 축구를 시작하고 불과 6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르망에서도 맹활약을 펼치자 독일 명문 구단 볼프스부르크가 그라피테 영입을 결단했다.
여기서 그라피테는 축구 인생 최정점을 찍게 됐다.
데뷔 시즌부터 12골로 화려하게 출발한 그라피테.
2008-09 시즌부터 마가트 감독 하에서 제코와 투톱으로 리그를 휩쓸었다.
리그에서만 25경기 28골로 득점왕에 등극했다.
특히 바이에른 뮌헨전에서 그라피테가 터트린 이 득점.
분데스리가 올 시즌의 골 + FIFA 푸스카스상 후보 3위까지 등극했다.
그 뿐 아니라 볼프스부르크는 창단 후 첫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그라피테는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로 선정됐다.
사실상 분데스리가의 왕이 된 셈이다.
한편 K리그 방출 이후 2년 만에 한 번 브라질 대표팀에 선발됐던 그라피테.
유럽 무대 맹활약이 이어지자 본격적으로 그라피테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둥가 감독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그라피테를 명단에 포함시켰다.
여기서 감격의 월드컵 데뷔까지 이뤄내며 성공 신화를 이어갔다.
한편 득점왕 이후 다음 시즌에도 좋은 활약을 선보인 그라피테.
챔피언스리그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18골로 제몫을 다했다.
하지만 남아공 월드컵 이후 그라피테에게 찾아온 노쇠화.
결국 2010-11 시즌을 마지막으로 빅리그 도전을 마쳤다.
이후 그라피테는 UAE 무대 알 아흘리에서 다시 한 번 부활했다.
데뷔 시즌부터 UAE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등 3년 간 맹활약을 펼쳤다.
이어 알 사드를 거쳐 친정팀 산타크루즈에서 2018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어린 시절 쓰레기 봉지를 줍던 소년의 뒤늦은 축구선수 도전.
연이어 계속된 실패, 그리고 극복.
그라피테의 축구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았다.
우리네 삶에도 큰 교훈을 주는 그라피테의 축구 인생이다.
움짤 출처 : 볼프스부르크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