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들의 집단 반발..." 한국 대표팀을 상대하던 선수들이 일제히 쓰러진 전무후무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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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들의 집단 반발..." 한국 대표팀을 상대하던 선수들이 일제히 쓰러진 전무후무한 사건
  • 이기타
  • 발행 2020.08.06
  • 조회수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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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역사적으로도 잊지 못할 순간이다.

1987년 6월 10일. 이 날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바로 6월 민주 항쟁이 시작된 역사적인 날이다.

 

 

군부독재와 5공화국을 향한 불만이 일제히 터지며 시작된 시위.

그 과정에서 전날 이한열 열사가 경찰의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다.

이를 계기로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KNN' 뉴스화면

 

마산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분노한 시위대와 경찰 간 충돌이 발생했다.

그런데 당시 마산에선 공교롭게 국가대표 축구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KBS 창원' 방송화면
'KBS 창원' 방송화면

 

사건은 시위 과정에서 발생했다.

시위대를 향해 던진 전경의 최루가스가 경기장 방향으로 흘러갔던 것.

 

'KBS 창원' 방송화면
'KBS 창원' 방송화면

 

경기장 내부까지 진입한 최루가스.

이를 맞고 상대 이집트 선수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KBS 창원' 방송화면
'KBS 창원' 방송화면

 

 

눈을 막고 코까지 막아도 좀처럼 견디기 힘들었다.

이집트 선수들 입장에선 생전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기도 했다.

 

 

'KBS 창원' 방송화면
'KBS 창원' 방송화면

 

반면 대표팀 선수들에겐 익숙한 일.

평소 최루가스를 종종 경험했던 선수들과 관중들에겐 큰 문제가 없었다.

 

'KBS 창원' 방송화면
'KBS 창원' 방송화면

 

하지만 더이상 경기를 속행하긴 어려웠던 상황.

이미 이집트 선수들 4~5명이 쓰러지기까지 했다.

 

'KBS 창원' 방송화면
'KBS 창원' 방송화면

 

결국 경기는 몰수무로 선언되며 종료됐다.

이집트 선수들은 재빠르게 코를 막으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온라인 커뮤니티

 

문제는 관중들이었다.

응당 받아야 할 환불이 이뤄지지 않으며 분노했던 것.

 

6월민주항쟁계승경남기념사업회

 

결국 관중들은 일제히 시청으로 환불을 요구하러 간다.

그 과정에서 시위대에 합류하며 자그마치 3만명이 넘는 규모가 형성된다.

 

 

 

처음엔 환불이 목적이었던 관중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독재타도', '호헌철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작은 환불이었지만 이후 독재정권을 향한 분노로 이어졌던 것.

 

이말년의 야구배설

 

한편 이날 경기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유일한 몰수 무승부 경기로 남아있다.

이집트 선수들 입장에선 한국의 매운 맛을 제대로 체감했다.

여러모로 축구 역사적으로도 잊지 못할 순간이다.

 

평범함은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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