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S를 수놓았던 역대 최고의 용병들. 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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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S를 수놓았던 역대 최고의 용병들. 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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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 2018.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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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베컴(David Beckham)

BBC 선정 위대한 영국인 33위에 랭크된 영연방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인 백암 선생임. 베컴이 가지는 영향력은 남달랐는데, 실제로 베컴이 MLS로 이적한 이후 관중이 꽤 많이 늘어났다는 부분만 봐도 이 형의 스타성이 드러남. 많은 축팬들이 알다시피 맨유 시절에는 무려 트레블을 하던 팀의 에이스로 군림했으며 오랜 기간 동안 명실상부 잉글랜드 국대의 자존심이자 최고의 스타였고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마지막 시즌에 팀을 하드캐리하면서 리그를 우승시킨 장본인이었음. 여기에 최고의 스타성은 덤. 미국에서의 시즌이 끝날 때마다 AC밀란으로 가서 클래스를 입증하겠다는듯이 월클 플레이를 선보이면서 많은 축구 팬들을 감동시키기도 함.

미국에서도 베컴의 실력은 여전했음. 물론 리그를 씹어먹는 수준의 스탯을 기록했던건 아니지만 꾸준한 경기력으로 역시 베컴이다라는 탄성을 자아내기에는 충분했고, 2011 시즌에는 리그 베스트 11에도 선정되는 등 꾸준한 실력을 발휘했음. 하지만 리그 우승과 스탯, 그리고 플레이 영상보다도 베컴의 중요성은 바로 MLS의 대중화가 아니었나 싶음. 물론 과거에도 유럽에도 볼 좀 찼던 노장 선수들을 많이 영입했었던 MLS였지만, 베컴급의 스타성과 실력을 가진 30대 초반의 선수가 MLS로 온 건 최초의 케이스였고, 베컴이 가진 스타성은 당시만 해도 축구선수들 뿐만이 아니라 운동선수로 범위를 넓혀도 독보적이었기 때문에 중요한 영입이 아닐 수 없었음.

MLS가 지금처럼 열광적으로 많은 관중들을 동원하고 해마다 관중과 미디어의 관심이 늘어나는데에는 베컴의 공이 굉장히 큼. 이제는 선수가 아닌 구단주로 다시 MLS로 참가하게 될텐데 다시 한 번 화제몰이를 할 것으로 예상됨.

프레드릭 융베리(Fredrik Ljungberg)

현 아스날 U23 감독이자 많은 해축 팬들이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그 이름, 무패우승의 주역 중 하나인 융베리임. 벵거 체제의 아스날에서 무패우승을 포함해 2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FA컵 우승을 경험했고, 2001-02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상까지 수상하면서 전성기를 보냈음. 스웨덴 국가대표팀에서도 2번의 월드컵에 출전해 모두 16강행을 달성해냈고, 유로 2004에서도 8강 진출에 크게 기여함. 하지만 자신이 주장완장을 달고 출전했던 유로 2008에서는 스페인과 돌풍을 이끌었던 러시아에게 연달아 패하며 조별예선에서 탈락했고,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스웨덴 대표팀에서 은퇴했음.

2007년 웨스트햄으로 이적한 뒤 2008년 계약을 해지했고 그 해 10월, 갑작스레 시애틀 사운더스와 계약하면서 MLS로 진출함. 그리고 2009 시즌에 매우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면서 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등 다시 한 번 부활의 날갯짓을 펼침. 이 때 EPL 복귀설이 나돌 정도로 잘했는데 부상에 시달리면서 다시 폼이 하락했고, 결국 2010 시즌을 마지막으로 미국을 떠나 스코틀랜드 셀틱으로 이적하게 됐고, 이후 일본에서의 커리어를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함.

팀 케이힐(Tim Cahill)

호주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한 명이자 에버튼의 레전드, 우리가 흔히 아는 그 영원한 캥거루 두목 팀 케이힐임. 잉글랜드 3부리그 팀이던 밀월에서 데뷔해 팀을 2부리그로 승격시키고 FA컵 준우승까지 선물한 뒤 2004년, 모예스가 이끄는 에버튼으로 이적해서 8년간 주전 공격수로 맹활약함. 그러다 2011-12 시즌을 마지막으로 에버튼을 떠나 MLS의 최고 팀 중 하나인 뉴욕 레드불스에 입단하게 됨. 2012 시즌 중반에 팀에 합류해 초반에는 그저 그런 퍼포먼스를 보였지만 2013 시즌에 미친듯이 회춘한 모습을 보이면서 리그 MVP 후보에도 올랐으며 팀 올해의 선수상과 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룸. 그러다 2014 시즌부터 서서히 폼이 내리막을 걷기 시작하더니 시즌이 끝나자 중국으로 떠나면서 2년 반 동안의 짧은 MLS 생활을 마침.

호주 대표팀에서의 기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지라 자세히 적지는 않겠음. 일단 월드컵에서 5골로 호주 역대 최다골을 기록하고 있으며 A매치 총합 108경기 50골을 기록하면서 A매치 역대 최다 골 기록도 보유 중인 레전드 오브 레전드임. 월드컵 출전도 역대 최다인 4회 출전.

로비 킨(Robbie Keane)

아일랜드가 배출한 천재적인 공격수이자 케인 이전의 토트넘의 간판스타 선수였던 로비 킨임. 젊은 시절, 프리미어리그에서 코벤트리 시티 소속으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맹활약을 펼치며 유럽 빅클럽들의 관심을 받았고, 인테르 밀란을 거쳐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뛰었지만 코벤트리 시절만큼의 포스를 보여주지 못했음. 하지만 리즈의 강등 직후 토트넘으로 이적하면서 기량이 만개했고, 6시즌 연속으로 리그 10골 이상 득점에 성공하면서 리그 정상급 공격수로 자리잡았음. 이후 흑역사로 남은 짧은 리버풀에서의 생활 이후 토트넘으로 돌아왔지만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고 결국 2010년 스코틀랜드 셀틱으로 임대를 떠나기에 이름. 셀틱에서는 미친 포스를 보여줬지만 토트넘의 그의 자리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고, 2011년 여름 MLS의 LA 갤럭시 이적이 확정되면서 미국 무대에 도전장을 던짐.

로비 킨이 미국 무대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시즌은 2012 시즌부터인데, 죽지 않은 골 결정력을 선보이면서 28경기 16골을 기록함. 이것을 시작으로 2012 시즌부터 2015 시즌까지 무려 4년 연속 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됐고, 2014 시즌에는 MLS MVP에 선정되면서 미국 무대에서 정상에 오름. 그렇게 2016 시즌까지 총 다섯 시즌 동안 125경기 83골이라는 위엄 넘치는 기록을 남겼고, 모든 대회로까지 범위를 넓히면 165경기 104골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떠남. 이후 인도 리그에 잠깐 진출해서 뛰었다가 2018년에 은퇴를 선언함. 참고로 아일랜드 대표팀 역사상 최다 출전자이자 최다 득점자인데, A매치 146경기 68골임. 갓갓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음.

알레잔드로 네스타(Alessandro Nesta)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이자 이탈리아 카테나치오를 설명하고 거론할 때 결코 뺄 수 없는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인 네스타. 비록 18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의 계약이었지만 캐나다에서 명품 수비의 진수가 무엇인지 직접 보여주고 가셨음. 네스타는 다들 알겠지만 라치오에서 데뷔했고, 라치오가 황금 스쿼드를 구축하는 동안에도 수비진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하면서 이태리 최고의 수비수로 이름을 떨쳤음. 이 때 리그 우승까지 기록하면서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지만 라치오가 재정 문제로 몰락하면서 AC밀란으로 이적. 10년간 밀라노 소속으로 뛰면서 또 다른 하나의 팀에서 전설로 기록됨. 말년까지도 크게 떨어지지 않은 클래스에 많은 이들이 감탄했던건 덤.

이에 반해 국가대표팀에서는 부상에 발목이 잡혀서 중요한 순간에 항상 사라졌음. 특히 월드컵에서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중간에 부상으로 낙마하면서 팀의 16강에서의 탈락을 지켜봐야만 했고, 2006년 월드컵 때는 다시 한 번 부상에 신음하면서 월드컵 우승은 했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김. 그나마 2000 유로가 네스타의 아스트랄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대회라고 할 수 있음.

네스타가 몬트리얼로 왔던건 밀란과의 계약이 막 끝났던 2012년 여름이었음. 팀에 합류한 이후에도 잔잔한 부상은 달고 살았지만 나올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플레이를 여러 차례 선보이면서 MLS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해주심. 덕분에 팀에서 마지막 경기를 뛸 때 구단에서 성대하게 은퇴식까지 치뤄줌.

티에리 앙리(Thierry Henry)

현 AS모나코 감독.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영연방 축구 역사상 최고의 용병으로 꼽히는 아스날의 영원한 왕, 티에리 앙리임. 다들 아는 사실이겠지만 앙리는 아르센 벵거의 지도 아래 1994년 AS모나코에서 데뷔했고, 이후 리게앙에서 알아주는 윙포워드로 성장하면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 스쿼드에도 포함됐었음. 하지만 이후 유벤투스로 이적 후 기량이 침체되면서 부진을 겪었고, 1999년 자신의 은사인 아르센 벵거의 부름을 받아 아스날로 이적함. 그렇게 아스날로 이적해서 포지션 변경을 통해 최강의 공격수로 성장하게 됐고, 8년간 369경기 226골을 기록하면서 아스날의 무패우승과 챔스 준우승을 이끄는 주역으로 성장함. 그러다 챔스 우승을 위해 바르샤로 떠나서 2008-09 시즌 과르디올라의 지휘 아래 트레블을 달성했고, 그렇게 모든 것을 이룬 앙리는 2010년 여름 뉴욕으로 떠남.

2010년에는 적응기를 보냈던건지 다소 부진했지만 2011 시즌부터는 다시 킹이라는 별칭에 어울리게 좋은 시즌을 보냈고, 이후 아스날에 잠시 임대를 갔다 온 뒤에는 흥에 겨웠는지 뉴욕에서 커리어 하이를 보내며 MLS의 정복자 포스를 보여줬음. 앙리는 실제로 MLS에서 4년 반 동안 뛰면서 무려 세 시즌이나 리그 베스트 11에 들었었고, 공격수로 뛰기는 했지만 팀의 플레이메이킹까지 도맡아하면서 팀의 공격 루트를 모두 연결해주는 등 단순히 골만 넣는 작업만 했던 선수가 아니었음. 아무튼 그렇게 앙리는 4년 반 동안 122경기에서 51골을 기록했고, 2014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 생활에 마침표를 찍음.

카카(Kaka)

역대 MLS로 진출한 선수들 중에서 단순히 '축구선수'로써의 위상만 보면 가장 클래스가 높았던 선수.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였으니. 물론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악의 먹튀겠지만 올란도 시티, 그리고 MLS에서의 카카는 확실히 돈값을 하는 선수였음. 카카는 많은 이들이 알겠지만 브라질 상 파울루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AC밀란으로 매우 어린 나이에 이적해와서 주전으로 자리매김한 선수임. 이후 안첼로티의 지휘 아래 여러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그 중에는 2개의 챔스 트로피도 있었음. 여기에 2007년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 선정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고 2009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고 이후 부상을 숨기고 월드컵에 무리하게 출전하면서 폼이 떡락하기 시작, 레알 팬들의 언급 금지대상 1호로 전락함.

하지만 그 와중에도 스탯은 꾸준하게 잘 쌓아나갔고, AC밀란으로 복귀한 뒤에도 꽤나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함. 그러다 2014년 여름, 신생팀인 MLS의 올랜도 시티로의 이적이 확정되면서 MLS 무대로 건너오게 됨. 이 때 카카가 오게 된 이유가 크게 보면 2가지인데, 첫째는 가족 문제 때문이었고 둘째는 올랜도 시티의 구단주가 브라질 출신의 사업가로 카카의 열렬한 팬이었기 때문. 어찌되었건 2015 시즌을 앞두고 남은 6개월 동안 카카는 상 파울루에서 임대형식으로 뛰게 됐는데, 좋은 활약으로 기대감을 높였고 2015 시즌부터 올랜도 시티에서 몸값에 걸맞는 맹활약을 보여주면서 3년간 올랜도 시티의 간판스타로 활약했음. 팀의 꼬라지를 보면 거의 축구도사에 선생님 같은 포스였는데 팀의 성적이야 그닥이었지만 카카 기준으로 보면 나름 볼만한 요소가 충분했음. 연봉이 80억 정도였는데 올랜도가 몰빵한데에는 이유가 있음.

국대야 뭐 많은 팬들이 알다시피 2002년 한일 월드컵 우승 멤버지만, 경기는 단 1경기도 안 뛰었음. 주전으로 활약했던건 2006년과 2010년이지만 모두 8강 탈락에서 그친게 아쉬운 부분. 하지만 2006~2010년 사이의 카카는 누가 뭐라고 해도 브라질의 명실상부한 에이스였고, 브라질 국적의 선수가 세계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던건 아직까지는 카카가 마지막임.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Bastian Schweinsteiger)

바이에른 뮌헨과 독일 축구 역사에 길이남을 전설적인 미드필더인 슈바인슈타이거. 바이에른 뮌헨 유스 출신으로 본래 윙어로 데뷔를 했고 돋보이는 능력을 보이며 독일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되면서 월드컵과 유로 대회를 경험했음. 하지만 2009년 루이 반 할이 뮌헨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슈바인슈타이거는 중앙 미드필더로 옮기게 됐고, 이 때부터 진정한 전성기를 맞으며 세계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로 성장하게 됐고, 독일 국대와 뮌헨의 전성기를 열어젖히는 주역이 됨. 알다시피 독일의 월드컵 우승과 뮌헨 트레블의 핵심 멤버였으며 뮌헨을 떠나기 직전까지 자타가 공인하던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였음. 하지만 맨유로 이적하면서 서서히 폼이 저하됐고 2017년 3월, 시카고 파이어와의 계약이 성사되면서 미국 무대를 밟게 됨.

사실 처음 올 때까지만 해도 폼이 완전히 맛이 간 상태 아니었냐는 의문이 아주 약간은 있었지만, 그딴거 다 씹어버리고 매 경기마다 중원을 잡아먹는 플레이를 펼치며 시카고 파이어의 돌풍을 이끌었음. 슈바이니의 데뷔 시즌인 2017 시즌에 시카고 파이어는 정규 리그 3위를 차지하면서 이변을 일으켰는데, 슈바인슈타이거는 매 경기마다 만점급 활약을 보여주면서 팀을 이끌었고, 윙어 시절에 자주 보여주던 현란한 개인기와 발놀림까지 보여주면서 부활을 선언함. 그리고 2018 시즌에 시카고 파이어는 귀신같이 폭망(...)했고 슈바인슈타이거 홀로 고통받는 인내의 시간이 찾아옴. 개인 스탯은 전 시즌과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팀은 리그에서 무려 18번의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8승 18무 8패라는 어메이징한 성적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함.

여담으로 슈바인슈타이거는 MLS로 와서 단순히 축구만 한게 아니라 시카고 지역 내에서 어마어마한 셀럽 취급을 받으며 NFL과 NBA 경기에 초대되어 공짜(...)로 경기를 관람하는 등 여기저기 자주 불려다녔음. 내년에도 시카고에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혹여 떠나더라도 슈바이니가 시카고 축구계에 다시 한 번 열풍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라는 사실은 결코 무시하지 못할 부분.

다비드 비야(David Villa)

스페인 축구 대표팀 역사상 최다 득점자이자 실질적인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우승의 1등공신. 1981년생으로 올해 나이가 벌써 37살이지만 이번 시즌에도 리그에서 15골을 기록하며 죽지 않은 폼을 보여주고 있음. 본래 스포르팅 히혼에서 데뷔해 2부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사라고사로 이적해서 1부리그에 자리잡는데 성공한 뒤 발렌시아로 이적함. 이후 라리가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로 떠오르면서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주전 공격수로 자리를 잡았고, 유로와 월드컵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움. 여기에 비록 발렌시아 시절만큼의 파괴력은 아니었지만 바르샤로 이적해서 챔스 우승을 경험하고 라리가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리그 우승과 함께 마침.

이후 시티 풋볼 그룹 소속의 MLS 팀인 뉴욕 시티로의 이적이 확정됐고, 2014년의 남은 기간 동안 호주의 멜버른 시티에서 잠시 몸을 푼 뒤 2015 시즌부터 뉴욕 시티와 첫 시즌을 보냄. 그리고 '다비드 비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친 활약을 보여주면서 첫 시즌부터 MLS를 씹어먹음. 리그에서 30경기 18골을 기록하면서 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별 답이 안나오던 신생팀인 뉴욕 시티를 캐리하면서 클래스를 입증함. 그리고 그 다음 시즌에는 리그 33경기 23골을 기록하면서 35살의 나이에 리그 MVP를 수상했고, 팀의 성적도 일취월장해 동부 컨퍼런스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커다란 변화를 이루게 됨. 이번 시즌까지 비야의 성적은 총 126경기 80골인데, 30대 중반에 나이에 이러한 기록이라니 그저 놀라울 뿐임.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뉴욕 시티와는 결별한다는 설이 돌고있지만, MLS에서 한 시즌을 더 뛰기 희망한다고 함. 물론 유럽이나 아시아로 갈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지만, 비야가 미국 생활에 만족하는만큼 MLS에 남는 그림도 나쁘지 않아 보임.

웨인 루니(Wayne Rooney)

영연방 역사에 길이남을 천재적인 재능이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선수인 웨인 루니. 축구 팬이라면 다들 잘 알겠지만 에버튼에서 축구를 시작해서 49경기 무패를 달리던 아스날을 엿 먹이면서 최고의 유망주로 떠올랐고, 이후 유로 2004에서 잉글랜드를 하드캐리하면서 맨유로 이적하게 됨. 그리고 맨유에서 무려 13년간 활약하며 잉글랜드 국대와 맨유 역대 최다 득점자가 됨. 비록 잉글랜드 국대에서의 활약은 논란이 많지만, 맨유에서의 전성기 시절 루니는 언터쳐블의 존재였으며, 비록 2인자라는 비판이 있을지언정 실력에 의문을 가졌던 이는 극히 드뭄. 2017년을 마지막으로 맨유를 떠나 에버튼으로 돌아갔고, 꽤나 쏠쏠한 활약을 해줬지만 결국 1년 만에 다시 이별, 2018년 6월 워싱턴 소재의 DC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면서 미국 땅을 밟게 됨.

그리고 오자마자 리그를 재패하는 활약을 보여주면서 전성기 시절 루축을 다시금 구현 중임. 여기에 노련미까지 더해져서 여유로우면서도 창조적이고 또 동시에 파괴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중. 이번 시즌 21경기 12골 6도움을 기록했는데 단순히 스탯 뿐만이 아니라 루니는 경기력 부분에 있어서 DC 유나이티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상황. 역시 맨유와 잉글랜드 주장 출신답게 멘탈도 단단해서 그런지 팀 내의 정신적인 지주로 이미 자리까지 잡음. 더 놀라웠던건 커리어 막바지에 왔던 많은 스타플레이어 선수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적응기 없이 리그를 재패하는 선수는 꽤 드문 편임. 그냥 루니가 난 놈이라고 봐야..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Zlatan Ibrahimovic)

군나르 노르달, 쿠르트 함린, 닐슨 리드홀름 등과 함께 스웨덴 역사상 최고의 선수 타이틀을 놓고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시대를 대표하는 공격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자국 명문팀인 말뫼를 시작으로 네덜란드 최고의 명문팀인 아약스를 거쳐서 유벤투스에 입단, 이후 칼치오폴리로 인해 라이벌 팀인 인테르로 이적해서 리그 4연패를 달성하며 전성기를 보냈음. 이후 챔스 우승을 위해 바르샤로 이적했지만 스페인 생활은 아쉽게 마무리됐고 이후 AC밀란으로 이적해서 다시 한 번 전성기를 구가한 뒤 PSG로 이적해서 프랑스 리그에 도전함. 프랑스에서는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더더욱 미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총 4년간 122경기 113골이라는, 30대라는 나이가 무색한 수준의 활약을 선보이며 전세계 축구 팬들을 놀래켰음.

이후 맨유에서도 부상당하기 전까지 나이에 걸맞지 않는 대단히 훌륭한 퍼포먼스로 자신의 클래스를 증명했고, 2018년 3월 맨유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LA 갤럭시와 계약하면서 MLS에 도전하게 됨. 연봉을 무려 90%나 삭감하고 입단했을 정도로 의지가 대단했는데, 의지에 걸맞는 미친 퍼포먼스를 다시 한 번 선보이면서 클래스는 영원하다는걸 보여줌. 이번 시즌 27경기 22골 6도움을 기록하면서 도스 산토스가 부상으로 골골 대면서 무너져가던 갤럭시를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시켰음. 비록 우승 도전에는 실패했지만, 워낙 나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활약을 많이 보여줬던 즐라탄인만큼 다음 시즌도 기대해봄직함.

*번외

CARSON, CA - JUNE 7: Defender Hong Myung Bo #18 of the Los Angeles Galaxy stands on the field before the game against the Colorado Rapids in the inaugural match at the state-of-the-art Home Depot Center on June 7, 2003 in Carson, California. The Galaxy defeated the Rapids 2-0. (Photo by Jeff Gross/Getty Images)

홍명보(Hong Myung-Bo)

홍명보라는 전설의 국대 및 클럽 커리어의 경우 대부분의 축구 팬들이 다 알고 있으니까 이 부분은 스킵하겠음. 사실 우리 명보형님 같은 경우는 굉장히 뜬금포로 MLS 이적이 이뤄진 케이스인데, 당연히 2002년 월드컵 종료 이후 포항에서 은퇴할 줄 알았지만 갤럭시 쪽에서 당시 월드컵 브론즈볼에 빛나던 홍명보의 영입을 원하게 되면서 이적이 급물살을 타게 됐고, 이적료도 적절한 선에서 협의되면서 말년에 MLS 진출을 하게 됨. 2003 시즌이 명보형님의 데뷔 시즌이었는데, 30대 중반에 접어드는 나이와 특출나지 않은 피지컬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MLS 공격수들을 가뿐히 쌈싸먹으면서(...) 갤럭시 팬들의 큰 호평을 받음.

이 당시 리그 30경기 중 25경기에 출전했고 우승과는 거리가 좀 있었지만 리그 최소 실점을 이끌었음. 하지만 바로 그 다음 시즌에 부상을 당하면서 은퇴를 선언했고, 이 시즌에는 13경기 출전에 그치게 됨. 하지만 갤럭시는 홍명보의 실력과 훌륭한 프로정신을 높이 사 성대한 은퇴행사를 열어줬을 정도로 우대해줬음. 여러모로 말년까지 클래스를 유지하며 품격을 보여준 케이스.

*글 출처: 에펨코리아 <다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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