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번의 롤러코스터, 그리고 오늘
상태바
99번의 롤러코스터, 그리고 오늘
  • 발행 2014.09.05
  • 조회수 1168
이 콘텐츠를 공유합니다
w

?흔히들 말하지.. 인생은 평탄하기만 할 수 없는, 마치 롤러코스터와 같은 것 이라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그것을 다시 극복하면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축구계에 바로 인생의 롤러코스터와 같은 축구인생을 살고 있는 선수가 있다. 바로 ‘라이언 킹’ 이동국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1998년 5월 16일 A매치 데뷔 이래 16년만에 센추리 클럽 가입을 눈 앞에 두고 있다. 16년 동안의 대표팀 생활에 있어 숱한 굴곡을 거쳐왔던 그이기에 다른 누구보다 감회가 남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차범근, 홍명보, 황선홍, 유상철, 김태영, 이운재, 이영표, 박지성을 이은 9번째로 이루게 되는 몇 안되는 대기록 보유자라는 측면에서도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다. 이동국은 바로 오늘 베네수엘라 전을 통해 센추리 클럽에 가입할 것이 유력하다. 센추리클럽 가입을 앞둔 이동국을 축하하며 그간 그가 거쳐온 굴곡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클럽경력이 아닌 대표팀 위주로 이야기 하겠다.


 

?아기사자의 화려한 등장?


 

?당시 황선홍의 계보를 이을 스트라이커로 주목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이동국은 98프랑스월드컵 대표팀에 승선하며 꿈의 무대를 밟게 된다. 조별예선 2차전인 네덜란드전에서 드디어 월드컵에 출전하게 된다. 패색이 짙던 후반 32분 서정원과 교체되어 그라운드를 밟은 이동국은 한 개의 헤딩슛과 중거리슛을 기록하며 자신의 등장을 알렸다. 김병지에게 월드컵 선방 2위라는 좋으면서도 씁슬한 기록에 큰 영향을 준 네덜란드전이었지만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알리는 의미있는 경기가 되었다. 이 후에도 이동국은 청소년대표팀, 올림픽대표팀, 아시안컵에서 활약하며 자타공인 대한민국의 간판스트라이커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첫번째 하강 ? 2002월드컵 엔트리 탈락과 군입대


 

?2000년도 까지 승승장구 하던 이동국은 분데스리가의 베르더브레멘에 6개월 단기 임대형식으로 이적하게 된다. 그러나 부상의 여파로 인해 구단에서 출장의 제한을 두었기에 제대로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 체제에서 월드컵명단에 승선하기 위한 경쟁이 한창이었기에 위기감을 느낀 이동국은 귀국을 선택하게 된다. 포항스틸러스로 복귀한 이동국은 예전과 같은 활약을 이어갔다. 하지만 2002년도 4월은 이동국에게 잔인한 한달이 되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차두리와 이동국을 놓고 고민하던 히딩크 감독은 체력싸움과 민첩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동국 대신 차두리를 선발하며 이동국은 월드컵엔트리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게된다.


결국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한 이동국은 같은 해 부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 주장으로 임명되며 명예회복을 다짐하였다. 당시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하며 축구에 대한 열기와 기대가 식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우승에 대한 기대가 컸다. 월드컵에서 활약한 박지성, 이영표, 이천수, 최태욱과 이동국, 김두현, 김동진 등 국내에서 활약상이 좋았던 선수들이 출전했기에 대한민국은 금메달 1순위로 꼽혔다. 그러나 너무나도 유명해진 이영표의 ‘동국아 군대가라’ 슛이 나오며 결국 이동국은 이듬해 상무에 입대하게 된다.


 

?발리슛 장인의 탄생


 

?군 입대가 그에게 약이 되었던 것일까? ‘게으른 천재’ 라는 오명을 얻었던 그가 플레이 스타일에 변화를 주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박스에서만 주로 움직이던 그가 더 많이 움직임을 통해 많은 찬스를 만들어내는 스트라이커로 변화하였다.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더 성숙해진 그는 조 본프레레 신임감독 아래에서 다시 한 번 승승장구 하게 된다.


2004년 아시안컵에서 4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그는 본프레레의 황태자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2004년 12월 19일 부산아시아드경기장에서 열린 독일과의 평가전에서 환상적인 발리슛을 성공시키며 팀의 3-1 완승에 기여하는 좋은 활약을 펼치게 된다.


이 후 그는 수 없이 많은 발리슛들을 성공시키며 발리슛의 장인으로 이름을 부각시키게 된다(이동국 발리슛 스페셜영상이 생겼을 정도다!). 이 후에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의 엄청난 활약으로 대표팀의 2006독일월드컵 진출에 큰 도움이 되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이것이 발리슛 장인의 클라스!! 화질은 이해바란다..)

 

?두번째 좌절과 긴 공백


 

?독일월드컵 진출에 엄청난 역할을 한 이동국은 본프레레 감독 후임인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눈도장을 찍는데도 성공하였다. 이로 인해 8년 만의 월드컵 출전을 눈 앞에 두는 듯 했고, 언론에서도 이동국의 엔트리 승선을 기정사실화 하였다. 하지만 하늘은 이동국의 월드컵 출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월드컵을 두 달여 앞둔 2006년 4월 5일 경기 도중 무릎십자인대 파열이라는 부상으로 월드컵 출전이 좌절 되었다. K리그 4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며 최고의 몸상태를 자랑하던 그는 월드컵에 출전하는 대신 재활치료를 위해 독일로 향하였다.


이 후 재활치료를 마친 이동국은 성공적으로 복귀하며 프리미어리그 미들스브로에 진출하게 된다. 데뷔전부터 그의 전매특허가 된 발리슛으로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게 되었다. 또한 2007년 아시안컵 출전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대표팀으로의 복귀도 성공적으로 이루어 지는 듯 하였다. 그러나 대회기간 중의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며 대표팀 자격정지 1년이라는 중징계를 받으며 다시 대표팀과 멀어지고 말았다.


 

?조심스러운 복귀, 꿈에 그리던 월드컵 진출


 

?징계기간 동안 그는 잉글랜드 미들스브로에서 방출되며 국내로 복귀하게 된다. K리그의 성남으로 이적 후 전북으로 트레이드되어 최강희 감독이라는 은사를 만나게 된다.


최강희 감독 아래에서 다시 부활에 성공한 이동국은 당시 대표팀 감독이던 허정무감독의 눈에 띄게 된다. 그가 받았던 징계 때문인지 그의 선발을 놓고 고심하던 허정무 감독은 K리그에서의 빼어난 활약을 펼친 이동국에게 드디어 기회를 주게 된다. 2009년 말 대표팀 복귀 직후 대표팀 전술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한동안 부진하였으나 2010년 초 열린 동아시아 대회와 평가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다시 한 번 부활을 알렸다. 그러나 2010년 5월 16일 열린 에콰도르와의 평가전에서 전치 3주의 부상을 당하며 4년전의 악몽이 되살아 나는 듯 하였다.


하지만 이근호를 제치고 최종엔트리에 합류하며 12년만의 월드컵 진출의 꿈을 이루었다. 대표팀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함께하는 큰 선물 또한 함께 받았다.




?대표팀은 그에게 맞지 않는 옷인걸까?


 

?2010남아공 월드컵 16강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며 비난을 받았던 그는 다시 소속팀에 돌아와 절정의 기량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당시 대표팀감독이었던 조광래감독으로부터 전술상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철저히 외면당하고 그나마 출전한 경기에서도 제대로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였다.


이후 은사인 최강희 임시감독체제에서 중용되며 월드컵 지역예선에 출전하며 다시 대표팀과 인연을 이어가는 듯 하였다. 하지만 월드컵 예선만을 지휘하기로 합의한 최강희 감독이 물러나면서 이동국의 대표팀 내의 입지는 다시 불안해 졌다. 특히 최종예선 이란과의 홈경기의 패배가 큰 원인이 되었다. 이란과의 경기에서 부진한 경기력을 보여 패배의 빌미를 제공하였다는 것이 원인이었다. 결국 홍명보 신임감독체제에서 부름을 받지 못한 채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월드컵 출전은 좌절되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


 

?지난 2013년 6월 18일 이란전 이후 1년 2개월여 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이동국은 최고의 컨디션을 자랑하고 있다. 2014브라질 월드컵에서 실패를 맛본 대표팀의 명예회복과 오랜만에 대표팀에 복귀하며 자신의 명예회복을 노리는 중요한 경기에 출전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자신의 센추리클럽 가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경기이기에 개인적으로도 의미있는 경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공교롭게 성남시절 자신을 트레이드 한 신태용 감독대행의 부름을 받은 것도 흥미롭다.


한국나이로 36살, 신인시절 안정환, 고종수와 함께 K리그의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던 그가 다섯 아이의 아빠가 될 정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리그의 최고 공격수의 자리에 있다. 16년의 대표팀 생활 만에 드디어 A매치 100회 출장의 기회를 얻은 그가 오늘 밤 어떤 활약을 펼칠지 기대된다. 지금까지 굴곡 많은 축구인생을 살아온 그가 오늘 다시 날아 오르길 기대한다. 아울러 남은 그의 축구인생도 응원하겠다! RESPECT!


 
 
copy_cc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