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의 풋볼레터 #3] 불확실성이 주는 긴장과 설렘, 그리고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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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의 풋볼레터 #3] 불확실성이 주는 긴장과 설렘, 그리고 축구
  • 야동말고 축동
  • 발행 2014.06.17
  • 조회수 2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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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에게,

살면서 후회하는 몇 가지가 있다. 이를테면, 친구 '서영준'에게 위닝을 졌던 일이라든지, 과음을 한 다음날 핸드폰 통화기록에 평소 흠모하던 여성과의 기억나지 않는 30분 간의 통화가 기록되어 있는 일이라든지 말이다.


그에 비견하게 후회되는 일 중 하나는 04/05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전반전만 보고 자버린 일이다. 말디니의 선제골과 크레스포의 두 골로 전반을 3대0으로 마치는 것을 보고 나는 바로 '에잇~'하고 자버렸다.


드라마는 내가 잠든 그 뒤에 쓰여졌다. 이미 결과가 예상되는 경기를 포기하고 자버린 나와 달리 리버풀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후반에만 세 골을 넣으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것이다. 그리고 연장전 끝에 승부차기를 통해 리버풀이 우승컵을 차지했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깨어있던 벗들에게는 '깨어 있어서 보람 있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정말 후회되는 것은 경기 결과가 나올 때까지의 그 과정의 설렘을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황지우 시인이 노래했던 그 설렘(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말이다. 매 슛이 '골이었다가 골이었을 것이었다가' 하는 그 설렘을 놓친 이후로 한 가지를 확실히 깨달았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축구는 생각보다 뻔하지 않다


 

20140613_025416 축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가 농담이 아니라면, 저 당시에 김상식이 축구 국가대표 선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기나 했을까
<사진 출처 - 네이버 화면 캡처>

 

경제학자들은 사회가 자연법칙과 비슷한 원리로 돌아간다고 이해하기도 한다. 일정 조건 하에서 특정 결론이 이루어질 확률이 높다는 것을 근거로 어떻게 보면 세상을 조금 단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감히 판단하건대, ?이러한 시각은 04/05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전반만 보고 자버린 내가 가졌던 시각과 같다. 세상은 그리 뻔하지 않다. 특히나 축구에 관해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가까운 사례를 찾아보자면, 얼마 전에 열린 13/14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있다. 벗들도 잘 알고 있겠지만 이 경기는 2분을 남겨두고 역사가 됐다(2분을 남기고, 드라마는 역사가 됐다 -김동균 bro). 그리고 리그 마지막 경기, 그것도 후반 막판이 되어서야 1,2위가 결정됐던 2013 K리그 클래식 마지막 라운드 울산과 포항의 경기 또한 그랬다. 이런 경기를 볼 때마다 축구를 즐기는 묘미를, 더 넓게 보자면 삶의 가장 큰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말이다. '불확실성', 그것이 바로 우리를 설레게 하고, 그 설렘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


 

2013 K리그 클래식 마지막 라운드 울산과 포항의 경기
추가 시간도 모두 지나버린 95분에 리그 우승팀이 결정되는 골이 터졌다.

설렘이 있기에 우리는 꿈꾸고, 꿈꾸기 때문에 우리는 설렌다.


 

some 썸타는 기분 제대로 나는 노래 '썸'
<사진 출처 - 로엔 엔터테인먼트>

 

'썸'이라는 노래가 많은 인기를 누렸던 것도 같은 지점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묘한 감정선, 사귀는 사이인 것도, 안 사귀는 사이인 것도 아닌 그 불확실한 상황이 마치 축구를 지켜보는 마음과도 같다. 축구에서 골은 마치 이 가사 속의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현실이 우리를 설레게 한다. 그 설렘을 느끼기 위해 리그 팬들은 목이 빠져라 매치데이를 기다린다. 꼭 이겼으면 좋겠지만, '이길지 질지 모르는 그 상황'이 정말 설레고 재밌기 때문이다.


경기 결과로 얻는 기쁨보다 더 값진 것은 그 경기를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이 아닐까 한다. 그 설렘으로 우리는 과제를 이겨내고 시험을 이겨내고 이른 등교 혹은 출근과 늦은 하교 또는 퇴근을 이겨낼 힘을 얻는다. 단정짓지 않음으로, 설렘을 느낌으로, 그리고 꿈을 꿈으로써 우리는 더 행복해질 수 있다.?자칫 그저 평범하기만 했을 수도 있는 한 순간 순간이 '무언가가 벌어질 수 있는' 중요한 순간으로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다. 같은 수업을 듣는 훈녀를 마주칠 순간을 기다리는 것은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벗들에게 그러한 설렘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역시나 축구를 보는 것이 아닌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1065001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0-4로 대패한 대한민국 대표팀,
그들에 대한 기대의 크기를 단정지어버리지는 말자.
<사진 출처 -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

 

10일 열린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월드컵 본선 시작 직전에 0-4로 대패하며, 많은 벗들에게 ‘암’이라는 질환에 대한 걱정을 증폭시켰다. 그렇지만 벗들은 그 친선 경기의 결과만을 토대로 시작되지도 않은 대회의 결과에 대해서 단정짓지 않았으면 한다. 마치 내가 2005년 봄에 리버풀과 AC밀란의 경기를 전반만 보고 결과를 미리 단정짓고 자버렸듯이 말이다. 우리는 앞으로의 본선에서 우리 팀의 경기 순간순간마다 설렐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말미암아 생기는 기쁨과 환희는 물론이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그 순간을 기다리며 느낄 수 있는 설렘을 '우리는 안돼'라는 시니컬한 태도로 날려버리지는 않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바로 지금이 그 설렘을 느낄 순간이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쓰여진 경기.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기에 축구는 더 재미있다.


한국 시간으로 18일, 러시아와의 조별예선 첫 경기가 열리기까지 이제 몇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벗들이 그 경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마치 '썸녀 or 썸남'에게 고백을 하러 나서는 길에 느끼는 설렘과 같길 바란다. 그 설렘은 리그에서 느끼는 설렘과는 또 다른, 월드컵이라는 이유로 4년에 한 번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설렘이기 때문이다. 혹시 아는가? 우리나라 대표팀이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릴지! 스페인이 네덜란드한테 '대패'할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결과가 나기 전에는 함부로 단정지을 수 없다. 헛된 망상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설레는 맘을 느꼈다면 '불확실성', 이 오묘한 삶의 진리를 믿어보자!


 

 

written by 이지수

2014 야축특파원jisu profile

안녕 브로들! 축구하고 축구보는 게 낙의 전부인 이지수라고 한다.

 

 

잠 안올땐....... 야동말고 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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