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티즌 김은중, “내 영광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by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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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티즌 김은중, “내 영광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by 90+
  • 발행 2014.05.19
  • 조회수 2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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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자신을 기억해주는 팬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곳에서 자신의 커리어의 마무리를 장식한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는 분명 선수 본인의 현 상황과 구단의 현 상황, 그리고 그를 기억하는 팬들의 감정까지 모두가 한 데 어우러져야만 가능한, 정말 꿈만 같은 일이다.


대전

믿어지기는 힘든, 늘 생각만 하던 꿈만 같던 일이기에 ‘레전드’의 친정팀 복귀는 가끔씩 거짓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나만 그랬는지는 몰라도 나는 박지성이 PSV로 복귀한다는 뉴스를 처음에 믿지 못했다. 박찬호가 한화로 온다는 소식 역시 마찬가지였고.


 

대전의 레전드 ‘샤프’ 김은중이 꿈만 같이 돌아왔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김은중의 복귀와 함께 대전은 K리그 챌린지에서 승승장구를 거두고 있다. 지난 16일, 대전 클럽하우스에서 김은중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눠봤다. 야축동 특파원 인터뷰이 중 최고참자인 김은중 형님에겐 당연히 극존칭의 존대말로 인터뷰가 진행됐다.


 

IMG_4858 대전의 클럽하우스도 김은중 선수만큼 샤프했다.

 

어제는 슈퍼스타, 오늘은 바리스타 김은중


 

김은중 선수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커피를 좋아하신다기에 커피를 하나 들고 왔습니다.

 

반가워. 커피 잘 먹을게.

 

커피는 언제부터 좋아하신 거예요?

 

사실 커피를 마신지가 얼마 안됐어. 2010년에 제주에 있을 때부터 마셨거든. 제주도가 놀러 가면 참 좋은 곳인데, 생활을 하게 되면 문화생활을 하는 게 제한되어 있어서 많이 지루해. 바다도 맨날 보니까 감흥도 없었고(웃음). 우연히 핸드드립 하는 커피숍을 가게 됐는데, 너무 매력적인거야. 커피 만드는 것과 커피향에 빠져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지.


 

어디서 배우신거예요 그럼?

 

거기서(웃음). 모든 제품들을 사서 집에서 해 먹고 그랬어. 커피를 하루에 두 잔 정도는 마시는 것 같아.

 

김은중 선수와 함께 했던 선수들에게 듣기론 “은중이형 방에 놀러 가면 책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커피향이 방 한 가득을 가득차고 있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ㅇㅇ야, 커피 한 잔 할래?’ 라고 커피를 추천해준다”고 들었습니다.


 

핸드드립은 시간도 좀 걸리고 여기는 원두 파는 곳도 마땅치가 않거든. 요즘은 캡슐로 간단하게 해서 후배들 만들어주는 편이야..

 

캡슐로 먹으면 안 쓴가요? 좀 쓰던데.

 

커피가 원래 쓰지(웃음). 물을 좀 더 타시면 되는데. 아니면 에스프레스 말고 롱고로 드시면 좋아. 에스프레스보다 좀 길게 뽑아 먹는 거야.

 

그럼 그 커피 장비를 방에 가지고 계십니까?

 

원래 숙소에 가지고 있었는데, 원두가 신선하고 갓 볶은 원두가 아니면 제 기능을 발휘를 하질 못하더라고. 그래서 요새는 안 갖고 다녀.

 

갓 볶은 원두는 조금 시큼하다던데요.

 

자기가 농도 조절을 할 수 있거든. 이게 내렸을 때 커피 거품처럼 올라오는데, 원두가 신선하지 않으면 그게 잘 안돼서 맛이 없어. 원두를 로스팅 하는 데가 많지 않으면 해 먹을 수가 없어서. 커피로 인해서 후배들과의 대화도 잘 되는 편이야. 제가 “차 한 잔 먹으러 가자”고 하면서 이런 저런 대화도 하고, 많이 친해지는 것 같아.


 

김은중 선수만의 좋은 원두 고르는 법이 따로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요즘엔 원두보다는 캡슐로 많이 먹는 편이야. 캡슐이 좋은 상품이 많더라고. 밖에 나갈 때면 S사만 가는 편이야. S사는 전국이 체인점이 아니라 모두 직영이라서 어딜 가든 맛이 일정하거든. 다른 브랜드는 잘 못 사면 커피물 먹는 느낌인데, S사는 ‘프로화’되어 있는 느낌이랄까. 나중에 기회가 되면 시애틀에 놀라가서 S사 1호점을 가보고 싶어.


 

저 가봤어요. 거기만 로고가 살짝 다르죠.

 

시애틀 날씨가 평소에 좀 우중충하다 그러는데, 그게 커피를 마시기에 최적의 날씨라 그러더라고(웃음).

 

IMG_6734 커피타임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하는 부드러운 남자

 

K리그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장본인


 

커피 얘기만 한참을 했네요. 요새 팀 분위기는 어떠세요?

 

쭉 이기다보니까 애들도 자신감이 생겼고, 연승을 하다보면 경기에 나가면 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다보면 경기에 지고 있어도 ‘우린 안 진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쉽게 안 지거든. 그 분위기를 딱 탄 것 같아.


 

이동국, 안정환, 고종수 등과 K리그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장본인이십니다.

 

그때는 참 재밌었어. 2003년에 우리(대전)이 성적이 좋았을 때는 우리가 홈 평균관중이 1위였던 걸로 기억해. 대전월드컵경기장에 평균 2만 명씩은 왔었으니까. 홈 승률도 1위었고. 요새 K리그가 관중이 많이 없는 게 이 이유가 포함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당시엔 어느 팀을 가도 팀마다 스타 선수가 있었어. 부산엔 안정환, 포항엔 이동국, 수원엔 고종수. 이런 식으로 팀을 대표하는 선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마땅히 팀을 대표하는 스타 선수가 없는 것 같아. 이게 자연스럽게 관중이 줄어드는 원인 중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


 

기억에 남는 팬이 있을 것 같은데요.

 

잘 알겠지만 ‘샤프’라는 팬클럽이 있어. 내가 대전에 십몇 년 만에 다시 돌아와서 첫 게임을 뛰는데, 그 팬클럽이 경기장에 찾아주셨더라고. 예전엔 20대 초반 어린 친구들이었는데, 지금은 애를 하나씩 데리고 왔더라(웃음). 예전에 그 친구들 덕분에 축구 하는 게 참 재밌었던 것 같아.

 

2001년 FA컵 우승이 기억에 많이 남으실 것 같아요.

 

그해가 아마 대전이 창단하고 처음으로 정규리그 꼴지를 했던 해였을 거야.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정규리그가 끝나고 FA컵이 열렸었는데, 대진표를 보니까 우리가 평소에 그나마 강했던 팀이랑 붙어있더라고. ‘아 이거 해볼 만 하겠는데’ 하고 경기를 했었는데, 하다 보니까 올라가게 됐고 운도 조금 따랐던 것 같고.


 

결승전에서 김은중 선수의 활약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포항이랑 경기였는데, 시작하자마자 (최)은성이형이 뼈가 함몰 되서 실려 나가고 그랬었잖아. 포항이랑은 선수층 자체가 엄청 났었지.


 

대전에 있을 당시 이관우 선수와의 콤비플레이를 기억하시는 팬이 많습니다.

 

잘 맞고 호흡을 한다는 거는 생각이 비슷하고 그러면 오래 안 맞춰도 빠르게 적응이 되거든. (이)관우형이랑은 생각하는 게 비슷해서 처음부터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아. 고마운 일이지.

 

'영혼의 콤비'라는 말이 가장 잘어울렸던 시리우스&샤프
출처: http://footballog.net/2

은우_1-now223.jpg 20세기 소녀들은 열광했었다. 은우커플에게.
출처: http://www.kfootball.org/best/170355

새로운 도전, J리그


J리그 베갈타 센다이

 

2003년에 J리그로 임대를 가셨습니다. 대전 팬들이 상당히 아쉬워했는데요.

 

대전이 그 때 2위에 있었고, 내가 22경기를 뛰고 갔었거든. 어떻게 보면 팀이 가장 좋을 때 떠난 건데, 구단에서도 나로 인해서 얻는 것도 있었고 나도 도전을 해보고 싶은 시기였어. J리그가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리그였고.


 

직접 부딪혀본 J리그는 어땠나요?

 

새로운 경험을 정말 많이 했어. 모든 시스템, 환경, 운영적인 부분에 한국이랑 많은 차이가 있더라고. 한국은 장비가 안 갖춰져 있는데 일본은 장비가 다 있었고.


 

장비라면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냥 간단한 거야. 한국은 유니폼을 우리가 챙겨가야 되고, 경기장 다녀오면 우리가 빨래 직접 하고 그랬었거든. 근데 일본은 원정 갈 때 자기 개인용품만 가지고 가는데 또 정장을 입고 가. 호텔에 들어서면 1인 1실에 모든 게 갖춰져 있고. 경기장에는 축구화랑 유니폼이 알아서 진열되어 있고. J리그 선수들은 그래서 자부심이 강해. J리그 선수들은 자기 관리를 위해서라도 명품에 투자를 많이 하더라고.


 

10년 전 일인데 K리그와 J리그에 많은 차이가 있었네요.

 

팬들도 의식이 달랐어. 한국은 종이 대충 찢어가서 “사인해주세요~~” 이러잖아. 근데 일본은 사인을 받는 판넬이 따로 있더라고. 훈련 끝나면 사인 받는 바리케이트가 있는데, 그 안에서 줄 서서 사인 받아. 사인 받으러 올 때도 정중하게 “사인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물어보더라고. 선수가 “미안하다. 오늘 피곤해서”라고 거절하면 팬이 먼저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돌아서더라. 뭐 하나 간단한 걸 하더라도 ‘여긴 참 정중하구나’라는 걸 느꼈지.


 

J리그에서의 복귀, 그리고 서울에서의 5년간의 시간


서울

하지만 일본에서 오래 뛰지 못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셨는데요.

 

사실 내가 처음에 일본에 갔을 때는 많은 기대를 하고 갔는데, 완전히 하위권 팀인데다가 선수들이 패배의식에 젖어있었어. 내가 거기서 무언가 변화를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더라고. 그래서 그 팀이 결국 2부로 떨어졌는데, 재계약 오퍼가 들어왔지만 2부에서 뛰기엔 아직 나이가 젊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됐어.


 

원 구단인 대전이 아니라 서울로 돌아오셨어요.

 

사실 계속 또 다른 도전을 이어가보고 싶던 생각이었어. 서울에서 태어난 것도 있고,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생활해보고 싶은 것도 있었고. 당시 서울은 지금에 비하면 상당히 약한 팀이었지.


 

FC서울에서 5년 간 뛰면서 많은 기록을 쓰셨습니다. 30-30 클럽도 가입하셨고 K리그 준우승도 경험하셨고요.

 

대전에 있다가 서울로 옮기니까 사실 불만이 많이 없었어. 지금이야 대전이 이렇게 좋은 클럽하우스가 있지만 당시엔 없었으니까. 대전에선 부족한 게 많았는데, 서울에선 그 부족한 걸 채워줬거든. 서울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선수들은 불만이 조금 있었어. 나처럼 열악한 환경을 경험하지 못해봤으니까. 서울은 또 뭐랄까, 정말 프로라는 느낌이었어. 대단한 클럽이었지.


 

IMG_4869 '프로'정신이 몸에 배어 있는 김은중 코치
(의상 - Ninetyplus NTP 협찬. 사진 클릭하면 이동)

 

어떻게 보면 아까 말씀하신 J리그가 보여준 프로다운 모습을 서울이 보여줬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네요. 2009년에 FA로 풀리시면서 강원으로 이적을 모색하셨는데, 이적료 차이로 결국 이적이 불발됐습니다.


 

그 때가 2008년에 금융위기가 터졌을 거야 아마. 전 구단이 다 힘들었을 거야.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결국 잘 안됐거든. 중국도 생각을 안 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중국 쪽이랑 얘기가 잘 됐어. 서울에서도 재계약을 하자고 했었는데, 2007년도에 십자인대 수술을 한 이후에 교체로 자주 뛰었잖아. 당시에 나이가 30살이었는데 아직 교체로 나서기엔 젊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이적을 생각했던 건데 한국은 사정이 별로 안 좋았고, 할 수 없이 중국으로 가게 됐지. 시즌 개막이 토요일이었는데, 그 전주 토요일에 계약을 하고 일요일에 한국 들어왔다가 월요일에 다시 중국으로 들어가서 그 주말 경기를 바로 뛰었어. 동계훈련도 참여를 안 하고(웃음).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현재 광저우푸리의 전신인 창사 진더

 

중국은 어떻던가요?

 

중국이 막 돈을 쓰기 시작할 즈음이거든. 환경은 아직 따라주지 않을 때였어.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한국과 중국의 차이도 당시만 해도 엄청났지. 중국 축구는 한국에 비하면 상당히 열악한 상황이었지.


 

중국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한 시즌을 거의 풀로 뛰었고 개인 기록도 괜찮았고요.

 

서울에서 십자인대 다치고 나서 몸 자체가 정상이 아닌 상태였는데, 중국에서 많은 경기를 소화했던 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 한 시즌을 풀로 뛰었으니까. 내 경험상 십자인대를 다치면 3년 정도 있어야 몸이 올라오거든. 근데 그 3년이라는 게 주축으로 경기를 나섰을 때를 얘기하는 거야. 계속 경기를 나가다나가다 하다 보면 몸이 올라오더라고. 어떻게 보면 중국에서의 시간이 내가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거지.


 

선수로서 전성기, 제주 유나이티드


제주

중국에서 제주로 이적하셨는데요. 제주는 어떻게 들어가신 건가요?

 

중국은 10월 31일에 모든 시즌이 다 끝나거든. 한국이랑 비교하면 내가 두 달 이득이었던 거지. 그런데 그 때 제주가 박경훈 감독님으로 일찍이 결정이 났더라고. 그래서 제주랑 계약이 빨리 이루어진 것 같아.

 

2010년 제주에서 정말 엄청난 활약을 하셨습니다.

 

제주에서 축구를 다시 한 번 재밌게 했었던 것 같아. 대전은 지는 경기가 많았는데, 서울에 있을 때는 늘 이기는 경기가 많았거든. 홈에서 비기기만 해도 분위기가 별로였으니까. 그런데 제주 같은 경우는 6강이 목표였던 팀이라 한 경기 승리에 목이 말라있었거든. 밑에서부터 올라가는 느낌이 굉장히 좋더라고.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까 리그 1~2위에 올라있더라고. 그러다보니까 시즌도 2위로 마감하고, 플레이오프도 나가고.


 

중국에서의 생활이 제주에서의 활약에 엄청난 도움이 됐다고 이해하면 되겠네요?

 

지나간 이야기이긴 하지만, 주변분들 얘길 들어보니까 “아 이제 김은중이 선수생활을 마감하려나보다”라고 은근히 얘기를 많이 했다고 하더라고. 그랬는데 2010년에 내가 돌아와서 그렇게 하니까 “아 그게 아니었구나”고 얘기가 뒤바꼈지(웃음).


 

실제로 중국가기 전에 그런 부분을 예상하셨을 것 같은데요. 몸이 아직 안 올라온 상태였으니까요.

 

풀타임으로 게임을 뛸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사실 서울에 있으면 몸이 편하지. 연봉은 연봉 대로 받고, 간간히 출전하고. 그게 편한 길이었지. 하지만 나는 앞은 안 보이지만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어. 나는 할 수 있는데, 나는 내가 90분 이상 뛸 수 있는 체력도 있고 능력이 있는데 내 능력을 버리고 싶지 않았어.


 

중국에서 축구화에 자수를 했던 일화가 있는데요.

 

아 그때가. 축구화에 자수를 하고 싶어서 인터넷을 뒤져봤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는 거야. 그런데 사이트 하나가 뜨더라고.(www.dosoccer.com) ?뭐는 만원 뭐는 2만원 그런 식이었어. 그래서 에이전트 시켜다가 전화를 해보라 그랬지.


 

당시에 직접 전화를 하셨는데, 김은중이라고는 직접 말씀 안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가 알고 계시더라(웃음). 중국에서 뛰는 선수라고 얘기는 했었거든. (이)동국이한테도 추천해줘서 동국이도 그 회사로 축구화 자주 보냈을 거야. 나중엔 귀찮아서 못 보냈다 그러더라고. 그게 부지런해야 해.

두싸커 사장님께서 엄청 생색 내시던 바로 그 자수 축구화

 

축구화에 자신의 이름과 구단명을 새길 정도의 선수는 어딜 가도 잘 될 거라고 생각하셨다 그러더라고요 사장님께서. 이후에 제주에서 활약하시는 거 보고 자수빨(?)이 조금 있는 것 같다면서 생색을 내시더군요. ^_^


 

당시에 자수에 대해서도 기사도 많이 나갔을 거야. 기자들도 많이 물어보시더라고(웃음). (안)정환이형도 대표팀에 있을 때 보니까 그 형 축구화는 늘 반짝반짝 거려. 축구화를 애지중지 하고 늘 깨끗하게 닦는 거거든. 나도 축구화를 깨끗하게 닦는 편이야. 다음 경기 때 깨끗한 축구화 신는 거랑 지저분한 축구화 신는 거는 느낌이 다르거든. 나는 지금도 후배들한테 그래. “야 축구화 좀 닦고 다녀라, 너가 프로인데 어린 친구들한테 깔끔하게 보여야지”라고. 축구화든 마킹이든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인 것 같아.


 

IMG_4852

 

다시 대전시티즌, '레전드'의 복귀


강원포항대전

이후 강원과 포항을 거쳐 대전으로 돌아오시게 됐습니다. 처음엔 미국으로 가시려 했다고 들었어요.

 

미국이랑 얘기가 잘 돼서 미국으로 계약을 하러 갈 계획이었거든. 그런데 마침 대전에서 전화가 왔어. 이게 계약이 잘 되려면 모든 게 맞아 떨어져야 하잖아. 감독님도 그렇고 구단 상황도 그렇고. 그런데 이번에는 이런 게 잘 맞아 떨어진 것 같아.


 

대전의 ‘레전드’로서 다시 돌아오셨는데요. K리그의 좋은 선례가 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사실 K리그에 그런 부분이 많이 부족했잖아. 대전에서도 날 많이 대우해주셨고. 그런 부분 때문에 대전에 돌아온 게 크지. 사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는데, 구단에서 이런 부분에 대해 인정을 해주신 거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플레잉 코치로 계약을 맺으셨는데, 주로 선수 편에 서시나요 아님 코칭스탭 편에 서시나요?

 

나는 중립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코치와 선수 사이의 조율이지. 선수들이 디테일하게 원하는 부분들을 함께 훈련하면서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겉에서 지켜보는 거랑 함께 부딪히면서 느끼는 거는 많은 차이가 있으니까. 같이 하면서 디테일한 부분을 애들한테 설명도 해주려고 노력하고, 경험과 노하우를 전달해주려고 노력하고 있고.


 

김은중을 기다린 대전 팬들이 상당히 많았는데요.

 

떠날 때만 해도 내 전성기를 시작할 쯤이었거든. 대전도 마침 좋아질 즈음이었고. 그래서 그 때 기억을 갖고 계시는 팬들이 많더라고. 그런데 지금은 10년이 넘게 지난 상태인데, 그 때 모습이 나올 수는 없지(웃음). 선수로서만 오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어.


 

IMG_6736


 

대전 유니폼을 입고 드디어 복귀전을 치르셨는데요.

 

처음 데뷔하는 것 같은 기분을 받았어. 설레이기도 했고. 내가 대전에서 다시 이 유니폼을 입고 다시 그라운드를 밟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렸으니까 설레임도 있었고 긴장감도 있었고. 많은 분들은 많은 경기를 뛰면서 골도 많이 넣고 그런 거를 생각하시지만, 난 지금에 만족하는 편이야. 성적도 괜찮고 후배들이 잘해주고 있는 거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나는 도우미 역할이지(웃음).


 

최근 대전의 상승세가 상당히 무서운데요. ‘특급 도우미’ 김은중 덕분인가요?

 

그건 아니야(웃음). 선수들 포함해서 코칭 스탭, 구단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준비를 잘 하고 있고 신경을 잘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일단 선수들이 열심히 해. 구단에서도 선수들 서포트를 정말 잘 해주고 있고.


 

K리그 팬 김종훈 님의 질문입니다. “김은중 선수에게 영광의 시대는 언제인가요?(슬램덩크 강백호 버전으로 물어봐주세요)"

 

영광의 시대.. 좀 광범위하네. 영광의 시대라...... 아직 안 온 것 같은데 (웃음).

축구인생 최고의 골은 무엇인가요?

 

대전에서 넣었던 프로 데뷔골이 기억에 많이 남아. 강원에 있을 때 400번째 경기를 뛰었는데, 우연치 않게 대전이랑 맞붙었는데 그 경기에서도 골을 넣었거든. 그 골들이 기억에 많아.



?김은중 K리그 400경기 출전 축하영상


다시 태어나도 축구를 할 생각이 있으세요?

 

다시 태어나면 한국 말고 어릴 때 나가서 배워보고 싶어. 조금 더 디테일하게 다른 환경에서 배워보고 싶어. 또 모르지. 야구를 해볼 수도 있는 거고(웃음). 야구를 자주 봐. 메이저리그를 좋아하거든. 류현진 경기도 자주 보고.


 

K리그 팬 이정우 님의 질문입니다. “이관우, 최은성 선수와 다시 뛰는 김은중 선수의 모습을 보고 싶어요”

 

그 분은 피파 전설의 카드를 사셔야겠는데? 아니면 대전의 OB vs YB를 열어보는 것도 좋지. 한 멤버 짜면 부를 사람 많아(웃음).


 

최종 꿈은 어떻게 되세요?

 

사실 꿈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뭔가를 정해놓고 있진 않아. 앞으로는 지도자를 할 것 같은데, 구단 경영에도 관심이 있거든. 스포츠마케팅과 축구산업에 대해 배워보고 싶어. 선수로서 여러 리그를 뛰어보고, 기업 구단과 시민 구단을 다 겪어보니까 구단 경영에 대해 눈에 보이는 게 조금 있거든. 그런 부분을 전문적으로 공부를 조금 하면 시민구단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 같은 돈을 써도 효율적으로 써야지. 시민구단은 같은 트레이닝복을 입어도 후줄근하게 입으면 안돼. 서울이나 수원 선수가 트레이닝복 후줄근하게 입고 나와도 “쟤넨 그래도 서울, 수원이니까” 하는데, 시민구단 선수가 트레이닝복을 후줄근하게 입고 나오면 욕 먹거든. 이런 디테일한 부분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


 

김은중 선수가 생각하는 참된 리더쉽이란 무엇인가요?

 

나는 신뢰라고 생각해. 모든 부분에 있어서 신뢰가 깨지면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통하질 않는 것 같아. 내가 저 선수를 못 믿는데, 저 선수는 나를 믿을 수 있을까? 내가 먼저 믿어줘야 저 선수가 나를 믿고 따라주지. 가장 큰 게 신뢰라고 생각해.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잖아.


 

마지막 질문입니다. 조금 진부하고 식상한 질문인데다가 다른 언론도 많이 물어봤을 법한 질문이지만, 지금 김은중 선수에겐 다른 느낌으로 다가 올 것 같기에 여쭤봅니다. “김은중에게 대전시티즌이란?”


 

내가 프로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곳이고, 내가 프로생활을 마무리하는 곳이 됐어. 대전 시티즌의 18년 역사를 다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그 중 한 사람이 됐지. 내 가슴 속에 늘 자리 잡고 있는 곳이야.

 

 

『야축동's Behind Story』


 

김은중 선수 인터뷰와 함께 브라주카 이벤트 진행한 썰


kimeunjo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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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가 대답해주지.


말도 못하게 잘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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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중 선수가 보면 감동할 만한 멋진 멘트들,


하지만 브라주카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니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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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


 

4


이 친구는 아예 편지를 썼군.


이 글을 통해서라도 김은중 선수에게 전해지길.


근데 저 한자 무슨 뜻이냐


 

event


당첨자는 김종훈 브로!


진짜 강백호 말투로 물어봤다.



 

나인티플러스 에피소드 다시 보기


#1?유태풍의 아직 끝나지 않은 스토리?(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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