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우도, 이운재도 아니다..." 대한민국 월드컵 역사상 '최고'라고 불리는 '레전드' 골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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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우도, 이운재도 아니다..." 대한민국 월드컵 역사상 '최고'라고 불리는 '레전드' 골키퍼
  • 이기타
  • 발행 2021.11.10
  • 조회수 17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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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있기에 한국 축구가 존재했다.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를 꼽으라면 두 명이 가장 먼저 나온다.

2002년 이운재, 그리고 2018년 조현우.

국내 뿐 아니라 세계 무대를 놀라게 한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단언컨대 모든 선수를 통틀어도 이 분을 이길 만한 골키퍼는 없다.

우리 축구사에서 영원토록 기억돼야 할 골키퍼다.

주인공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주전 골키퍼 故 홍덕영 옹.

 

홍덕영 옹

 

때는 6.25 전쟁이 끝나고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1954년.

말 그대로 그깟 공놀이 따위 신경쓸 겨를이 없었던 시기다.

그 시절 아시아에 배정된 월드컵 티켓은 단 한 장.

한일전에서 역사적 승리를 거둔 뒤 스위스 월드컵 티켓을 따냈다.

 

대한축구협회
대한축구협회

 

문제는 한국 대표팀 선수들의 환경이 매우 열악했단 사실.

단복조차 없어 임원이 아는 양복집에서 외상으로 맞춰 입었을 정도다.

게다가 한 조에 속한 팀이 헝가리, 서독, 터키.

특히 헝가리는 당대 최강의 팀으로 이 대회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당대 최강 헝가리 대표팀

 

가는 길 역시 험난했다.

일본까지 미군 수송기를 빌려탄 뒤 도쿄-방콕-콜카타-로마-취리히로 이어지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그마저도 티켓이 모자라 출전 최소 인원인 11명이 스위스에 도착하지 못할 뻔했다.

이들을 도운 건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왔던 한 영국인 부부.

"월드컵에 비행기 표가 없어 못 가는 게 말이 안 된다"며 티켓을 양보했다.

 

양복점에서 맞춰입은 단복

 

48시간에 걸친 비행 끝에 도착한 스위스.

다른 팀들은 한 달 전부터 현지 적응에 나선 상황.

한국 대표팀 선수단은 대회가 시작된 뒤에도 스위스에 도착하지 못했다.

선수들이 도착한 시점은 헝가리와 경기 2일 전 밤이었다.

이후에도 훈련은 고사하고 유니폼에 등번호를 달기 위해 바느질과 축구화 손질에 시간을 보냈다.

 

경기 전 악수하는 주장 주영광 옹

 

그렇게 첫 경기 상대로 맞이한 우승 후보 헝가리 대표팀.

당시 규정상 필드 플레이어들은 선수 교체를 할 수 없었다.

결국 장시간 비행과 시차 적응으로 경기 도중 쓰러진 우리 선수들.

교체 없이 사실상 7명만 뛰며 우승 후보 헝가리를 상대했다.

이를 보는 현지 기자들조차 경기 도중 수면에 들어갈 정도였다.

 

꿀잠 자는 현지 기자

 

하지만 우리 대표팀은 포기하지 않았다.

경기 전 김용식 감독은 선수들에게 다음과 같이 외쳤다.

"다 져도 좋다. 그래도 한 골만 넣고 끝내자."

"그래야 전쟁 때문에 힘든 국민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지 않겠나?"

 

대한축구협회
대한축구협회

 

전해진 바에 따르면 대한민국이 허용한 유효 슈팅은 자그마치 100여개.

이 수치가 과장됐다 해도 1분에 한 번 이상 슈팅이 나왔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홍덕영 골키퍼는 절망의 상황 속에서 홀로 선방 쇼를 선보였다.

단 9골만을 허용하며 90% 이상의 경이로운 선방률을 기록했다.

 

몸 날려 선방하는 홍덕영 옹

 

"푸스카스의 슈팅이 붕 소리를 내며 날아오고, 골대에 맞으면 위잉 소리가 울렸다."

당시 경기를 이렇게 회상한 홍덕영 옹.

경기 후 홍덕영 골키퍼의 온몸엔 멍이 들고, 갈비뼈가 골절됐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공을 잡고 난 뒤엔 플레이를 대신 경기장 너머로 멀리 차는 걸 선택했다.

( * 당시엔 여분의 공이 없고, 오로지 한 개의 공만을 가지고 진행됨. )

 

경기장 곳곳에 쓰러진 대표팀 선수들
경기장 곳곳에 쓰러진 대표팀 선수들

 

결국 헝가리 대표팀에게 0-9로 패한 대표팀.

하지만 두 자릿수 패배를 당하지 않은 것만으로 기적이었다.

여기엔 홍덕영 골키퍼와 나머지 선수들의 엄청난 투혼이 존재했다.

이 경기를 중계한 해설자의 멘트다.

"한국 대표팀은 종전 후 1년도 되지 않은 국가의 선수들입니다."

"그럼에도 엄청난 투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분들께서 이들에게 응원을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엄청난 체격 차이

 

이 사정을 안 유럽 축구팬들은 한국 대표팀 숙소에 들이닥쳤다.

그러곤 각자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산더미같이 싸아놓고 돌아갔다.

홍덕영 골키퍼에겐 현지 팬들의 사인 요청까지 쏟아졌다.

한편 헝가리전 이후 도착한 2진 선수들.

2차전 터키와 경기에서 0-7로 패하며 3차전을 치르지 못하고 조기 귀국했다.

너무나도 컸던 세계와 격차, 준비 시간 부족 등 한계를 체감해야 했던 대표팀.

그 모든 걸 뒤에서 홀로 감당해야 했던 홍덕영 골키퍼.

 

 

 

시간이 흘러 2002년.

홍덕영 옹은 히딩크호의 4강 신화를 병실에서 TV로 지켜봤다.

"후배들이 원을 풀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긴 채 2005년, 79세 나이로 눈을 감았다.

지금의 한국 축구가 있기까지 선구자적 역할을 한 레전드 선수들.

이들이 있기에 지금의 박지성, 손흥민이 존재했다.

 

움짤 출처 : 중계화면

평범함은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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