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주 이동국의 롤모델..." 한국의 이례적인 귀화 요청을 거부했던 'K리그' 출신 라리가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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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주 이동국의 롤모델..." 한국의 이례적인 귀화 요청을 거부했던 'K리그' 출신 라리가 선수
  • 이기타
  • 발행 2020.09.18
  • 조회수 3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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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도 라데를 잊지 못하는 팬들이 많은 이유다.

1992년, K리그에 낯선 동유럽 출신의 외국인 선수가 입성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 팬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이 선수.

K리그 입성과 동시에 전설이 됐다.

 

 

국가대표 레전드 황선홍과 함께 포항에서 전설을 써내려갔다.

두 선수의 호흡은 지금까지도 K리그 올드팬들에게 회자될 정도다.

 

 

당시 포항 공격진은 대한민국 국가대표 팀보다 강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황선홍과 라데의 호흡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 때문.

포항에서 5년을 뛰며 라데가 기록한 스탯은 147경기 55골 35어시스트.

K리그 전체 역사를 통틀어도 레전드 그 자체다.

 

 

게다가 김치를 좋아하며 한국 문화에 너무도 잘 적응했던 라데.

당연히 대한민국 귀화 여론이 들끓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5년을 활약하며 기본 요건은 갖췄던 상황.

하지만 라데는 끝내 귀화를 거부하고 J리그 무대로 향했다.

 

뉴스화면

 

이유는 따로 있었다. 

조국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를 꿈꿨기 때문.

당시 유고슬라비아는 스토이코비치, 스탄코비치, 밀로셰비치 등 스타 선수들이 즐비한 팀이었다.

그럼에도 조국에서의 국가대표 선발을 꿈꿨다.

 

뉴스화면

 

그리고 마침내 라데의 꿈이 이뤄지던 날.

공교롭게 그의 국가대표 데뷔전은 1997년 한국에서 열린 코리아컵이었다.

기회의 땅 한국에서 조국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의 꿈을 이룬 라데. 

 

 

3경기에 나서 2골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라데의 대표팀 활약은 여기까지였다.

 

뉴스화면

 

워낙 선수층이 두터웠던 탓에 라데가 파고들 틈은 없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라데는 더 큰 기회를 받게 된다.

1997년, 라리가 AT마드리드 입단으로 K리그 최초의 빅리그 진출 선수가 됐다.

그와 동시에 "한국은 날 키워준 국가"라는 호감 인터뷰까지.

 

 

AT마드리드에서도 라데의 활약은 이어졌다.

당시 라리가 득점왕이자 이탈리아 레전드 공격수 비에리의 백업 공격수로 활약했다.

제한적 출전 기회에서도 14경기 6골로 제몫을 펼쳤다.

 

 

이후 출전 기회를 위해 NAC 브레다로 향한 라데.

반 시즌 동안 가치를 증명하며 분데스리가 명문 베르더 브레멘의 부름을 받았다.

그 당시 한국인 선수와도 인연을 맺었다.

 

'KBS' 뉴스화면
'KBS' 뉴스화면

 

바로 유망주 이동국.

베르더 브레멘 임대 시절 라데와 한솥밥을 먹었다.

당시 라데는 브레멘의 핵심 공격수였고, 이동국은 임대생 겸 유망주였던 시절.

주전 경쟁과 별개로 두 선수 모두 포항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라데는 심지어 한국어도 능숙해 이동국의 룸메이트를 자청할 정도였다.

 

'KBS' 뉴스화면
'KBS' 뉴스화면

 

이동국 역시 라데를 따르며 상당히 존경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에 방문해 브레멘과 친정팀 포항의 맞대결에 출전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한국과 인연이 많았던 라데.

 

'KBS' 뉴스화면

 

만약 대한민국 대표팀으로 귀화를 했더라면 역사가 바뀔 수도 있었을 터.

물론 국민적 정서를 고려할 때 쉽지 않았을 수는 있다.

하지만 라데라면 또 다르다.

한국어도 능숙했고, 무엇보다 실력 면에서 차원이 달랐던 선수.

당시 국가대표 레전드 공격수 황선홍과 호흡도 엄청났다.

 

 

무려 라리가에서 제몫을 다했던 공격수이기도 했다.

K리그 올드팬이라면 아직도 기억하는 공격수 라데.

지금까지도 라데를 잊지 못하는 팬들이 많은 이유다.

 

움짤 출처 : 사커라인 "유주", 펨코 "현승희"님

평범함은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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