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찾아온 비극..." 스페인 국대 '라모스'가 '15번'만을 고집하게 만든 그날의 '끔찍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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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찾아온 비극..." 스페인 국대 '라모스'가 '15번'만을 고집하게 만든 그날의 '끔찍한' 사건
  • 이기타
  • 발행 2020.05.05
  • 조회수 5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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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푸에르타여 편히 잠들어라, 영원히 잊지 않겠다"

세르히오 라모스는 레알 마드리드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하지만 라모스가 처음부터 레알 출신은 아니었다.

라모스는 세비야 유스 출신으로 나고 자랐다.

차근차근 성장해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이 된 것이다.

 

 

세비야 유스 시절 라모스는 같은 수비수 푸에르타와 함께 피땀흘린 노력을 했다.

2003-04 시즌 두 선수는 나란히 양쪽 풀백으로 데뷔하며 꿈을 이뤘다.

 

 

클래스를 보이며 라모스와 푸에르타 모두 레알 마드리드의 영입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푸에르타는 세비야에 남았고, 라모스는 레알로 향했다.

 

 

푸에르타는 세비야에서 UEFA컵 2회 우승을 이뤄내며 스페인 전역의 주목을 받았다.

미래가 창창할 것만 같던 푸에르타에게 비극은 한 순간 찾아왔다.

2007-08 시즌 개막전 헤타페와 홈경기에서 푸에르타는 심장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이게 그라운드에서 푸에르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의식을 차린 뒤 라커룸에 들어갔지만 한 차례 더 쓰러진 푸에르타.

결국 22살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그렇게 며칠 뒤, 라모스는 레알 소속으로 득점을 기록했다.

그러자 "형제 푸에르타여 편히 잠들어라, 영원히 잊지 않겠다"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로 세레머니를 했다.

 

 

라모스는 이후 푸에르타가 스페인 국대에서 사용한 등번호 15번을 자신의 번호로 지정했다.

레알에선 4번을 달지만 국대에선 15번을 다는 이유다.

 

 

이후에도 라모스는 스페인 국대로 메이저 대회 우승할 때마다 푸에르타 얼굴이 프린팅된 옷을 입고 참석했다.

특히 왼쪽 팔에 "다비드의 별"이라는 문신을 남기며 푸에르타를 기리기도 했다.

 

ⓒ 더 선

 

함께 꿈을 키웠던 두 선수.

그만큼 우정도 진했으리라.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푸에르타를 잊을 수 없는 이유.

절친 라모스가 있는 한 하늘에서도 외롭지 않을 거다.

멋진 수비수였던 푸에르타, 그를 기리며.

평범함은 거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