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이순신 그리고 차범근
영화 「명량」으로 업적을 재조명받고 있는 이순신 장군을 보면서 '차붐'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같은 듯 하면서 다른, 다른 듯하면서 같은 길을 걸어온 두 불세출의 영웅은 나를 모니터 앞에 앉게 만들었다.
돌아온 충무공과 잊혀진 지도자 차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웅적 면모와 업적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얼마 전까지는 빨간 쫄쫄이를 즐겨입는 철남자, 초록색 근육 괴물, 돈은 못벌고 영웅심만 쩌는 거미남 등 외국 히어로들에게 밀려 대중적 관심을 많이 받지 못했다. 영화?「명량」을 통해 돌아온 이순신 장군은 영화 속에서 보여준 훌륭한 리더십과 엄청난 카리스마로 관객을 압도하고 그 업적을 재평가받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어린이들의 영웅은 아이언맨도 캡틴 아메리카도 아니다.?「명량」을 본 어린이들은 존경하는 인물 칸에 당당히 '이순신 장군'을 적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 세대의 축구 영웅은 '차붐' 차범근이었다. 차범근은 화려했던 선수 시절에 비해 지도자로서는 별로 빛을 받지 못했다. 이순신 장군은 영화 「명량」으로 돌아와 외국 히어로들을 제치고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지도자로서의 차붐에 대한 관심은 찾아보기 힘들다. 축구를 좋아하는 어린 친구들이 차범근을 피파 온라인 게임에 나오는 전설의 선수로만 기억할까봐 두렵다.
영웅 탄생의 서막 : 임진왜란과 1996 아시안컵
- 임진왜란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에 일어났다. 이 시기의 조선은 사대부의 편당 정치, 10만 양병설 정도는 찌라시로 만들어 버리는 탁월한 정책 능력 등으로 망할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략은 수륙병진계획, 바다와 육지를 동시에 공략하는 전략이었다. 육지로 옮겨 놓은 왜의 육군은 승승장구했지만, 육지까지의 활로를 뚫어줘야 하는 수군은 이순신 장군의 수군에 막혀 연패를 거듭했다.
?
- 1996 아시안컵과 그 이후
1996년 아시안컵에서 대한민국 축구는 충격에 빠진다. 조별 예선을 1승 1무 1패로 마감한 대한민국은 각 조 3위끼리 골득실까지 계산하는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8강에 오른다.
비극은 이란과의 8강 경기에서 일어난다. 이란 축구의 영웅 알리 다에이에게 4골을 헌납하며 6:2라는 치욕적인 스코어를 기록하고 8강에서 탈락하고 만다. 이후 몇 년 동안 대한민국은 이란만 만나면 알리 다에이 증후군에 시달렸다.
<아시안컵에서 이란에게 발리는 대한민국 대표팀>
아시안컵에서의 실패로 박종환 감독이 사임했고, 1998 프랑스 월드컵 예선을 앞둔 대표팀의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1997년 1월, 대한축구협회는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수습하고 대표팀을 프랑스 월드컵으로 이끌 적임자로 차범근 감독을 선택했다. 협회와 국민들은 차범근 감독이 보여줄 독일식 시스템에 큰 기대를 걸었다.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차범근 감독 부임 후 대표팀은 좋은 폼을 유지하면서 월드컵 최종 예선까지 순항했다. 최종 예선 상대는 일본,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그리고 아랍에미리트. 아랍에미리트나 우즈베키스탄도 까다로운 상대였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대표팀에게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숙적 일본이었다.
영웅의 탄생: 한산도 대첩과 도쿄 대첩
임진왜란의 발발은 조선을, 1996 아시안컵에서의 비극은 대한민국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난세에는 영웅이 나오는 법, 조선에는 이순신이, 대한민국 축구계에는 차범근이 있었다.
- 한산도 대첩
왜군은 수군에서의 연패를 만회하고 원활한 조선 침략을 위해 한 방을 노리고 있었다. 이 '한 방'을 카운터 어택으로 되돌려준 해전이 한산도 대첩이다.
이순신 장군은 조선 수군의 두 배 가까이 많은 병선을 보유한 왜군을 상대로 적을 한산도 앞바다까지 유인해 그 유명한 학익진을 펼치며 왜군을 무찔렀다. 왜군이 초전박살난 이 해전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로 꼽힌다. 한산도 대첩은 이순신 장군이라는 영웅을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린 큰 해전이었다.
- 도쿄 대첩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 대첩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면, 차범근 감독은 도쿄 대첩으로 국민적 영웅에 올랐다.
일본 대표팀은 2002 한일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1998 프랑스 월드컵 본선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 대표팀은 차범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조금씩 안정된 모습을 보이며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2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1997년 9월 28일, 프랑스 월드컵 진출을 걸고 일본의 축구 성지 도쿄 국립 경기장에서 대한민국과 일본이 맞붙었다. 일본은 월드컵 진출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초반부터 대한민국을 밀어붙였다. 대한민국은 고정운의 볼 컨트롤 미스로 일본의 야마구치에게 선제골을 허용한다. 승기를 잡은 일본은 수비를 보강하며 수비적인 전술을 사용한다. 골이 필요한 차범근 감독은 수비수 홍명보까지 공격에 가담시키면서 공격적으로 경기를 운영한다. 결국 차범근 감독의 공격적인 전술이 적중해 서정원의 헤딩슛, 이민성의 중거리슛으로 일본의 축구 성지에서 일본 대표팀을 무너트린다.
차범근 감독은 도쿄 대첩을 승리로 이끌며 기분 좋은 3연승을 달성한다. 이에 힘입어 대한민국 대표팀은 최종예선에서 6승 1무 1패라는 성적을 거두고 프랑스 월드컵 진출에 성공한다. 아시안컵에서의 부진 이후 어수선했던 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 진출까지 성공한 차범근은 감독으로서도 국민적 영웅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두 영웅의 백의종군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 대첩 이후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왜군이 이순신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였다. 하지만 망할 징조를 보이던 조선의 대신들에게는 이순신이 눈엣가시였다. 원균 장군과의 갈등을 도화선으로 '쳐들어오는 왜군을 맞아 싸우라'는 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죄를 씌워 이순신 장군을 백의종군시켰다. 이순신 장군이 싸우지 않은 이유는 두려워서가 아니라 계략에 빠져 큰 위험에 처할 수도 있어서였다. 여기서 백의종군이라 함은 일개 평민 신분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으로 따지면 해군 참모총장이 이등병으로 참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차범근 감독은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예선 두 경기만 치른 채 경질당했다. 비록 패배한 감독이기는 하나 월드컵이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 한 성급한 경질이었다. 당시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축구협회가 이례적으로 현장에서 긴급기술위원회를 열어 전격적으로 차 감독을 경질했다고 한다.
대표팀 감독 경질 이후 차범근 감독은 중국으로 건너가 지도자 생활을 했다. 당시 중국 축구의 위상을 고려하면 축구판 백의종군이었다.
중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던 중 월간 조선(1998년 8월호)과의 인터뷰에서 차범근 감독은 '한국 프로 축구 경기에서 선수들이 본인도 모르게 공모해 승부 조작을 하고 있다'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국가대표 이전 울산 감독 시절 알게 된 이야기를 인터뷰를 통해 밝힌 것이다. 명확한 사건과 물증이 발견되지 않은 발언이었지만 프로팀과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했던 사람의 뼈있는 고백이었다. 큰 파장을 몰고 온 이 발언은 협회와 연맹의 진상 조사를 통해 "승부 조작은 없었다"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명예훼손을 이유로 차범근 감독에게 5년 간 국내 지도자 자격 박탈이라는 징계를 내렸다. (관련 기사 : <한국스포츠 100년>(48) '98월드컵과 차범근 발언 파동, 연합뉴스)
개인적으로 '차범근 감독이 저런 발언을 한 이유는 대한민국 축구의 위기를 막고자 함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해본다. 차범근 감독은 징계도 국민들의 지탄도 두려워하지 않고 소신있는 발언을 했다고 생각한다. 차범근 감독의 발언에 조금만 더 귀를 기울이고 더 심도있는 진상 조사를 했다면 2011년의 승부 조작 스캔들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돌아올 영웅 차붐
이순신 장군이 명량으로 돌아와 조선을 구했다. 40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그의 업적이 높게 평가받고 있다.
나는 차붐에게 '이순신 장군이 조선을 구한 것처럼 대한민국 축구를 구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 '지도자 차붐'도 우리의 영웅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차붐은 선수로서 그리고 지도자로서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했었다. 더 이상 그가 축구 일선에 나서지 않는다고 해도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 지도자든 행정가든 그가 축구 일선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그는 어디선가 축구와 함께 할거라 생각한다. 감히 우리가 어찌 차붐의 축구를 논하겠는가? 차붐의 역사는 차붐이 만들어가고 있다.
영웅의 플레이를 본 것이 평생 자랑인 우리 아버지, 영웅이 지도하는 팀의 명승부를 본 것이 유일한 자랑인 우리 사촌형, 평생 유일한 자랑을 만들어 줄 영웅을 기다리는 나. 과연 나의 차례가 올까?
written by 고강민
2014 야축특파원
축구를 떠드는 시크한 글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