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들에게 최고의 골키퍼는 누구인가?
김병지, 이운재, 조현우 등 다양한 이름이 나올 거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최고로 성장할 거라 생각했던 골키퍼가 있다.
주인공은 차기석.
191cm라는 큰 신장에 남다른 반사신경으로 일찍이 두각을 드러냈다.
그런 그가 처음 팬들에게 알려진 건 2002 U-17 아시아청소년대회였다.
당시 빛나는 선방쇼로 대회 MVP를 차지하며 혜성같이 등장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불과 18세 고등학생 신분이던 차기석은 2004 아시안컵 명단까지 포함됐다.
이운재, 김용대라는 기라성같은 선배들에 이어 3번째 골키퍼로 활약했다.
비록 출전은 못했지만 고등학생, 그것도 골키퍼가 차출된 건 이례적이었다.
이후 2005년 FIFA U-20 세계청소년대회에선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다.
차기 국가대표 주전 골키퍼가 되는 정성룡은 당시 차기석에 밀려 벤치를 지켰다.
이런 그의 활약을 눈여겨본 이가 있었으니...
바로 히딩크 감독이었다.
PSV 아인트호벤에 합류해 테스트까지 봤던 차기석.
비록 입단까지 이뤄지진 않았지만 차기석에겐 밝은 미래가 기다릴 줄 알았다.
하지만 그 해 겨울, 차기석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만성 신부전증 말기라는 진단을 받은 것.
의사 역시 "선수 생활은 더 힘들 것"이라며 조언했다.
누구라도 포기했을 차기석의 이 상황.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신장을 이식받아 새 삶을 얻었다.
전남 드래곤즈 유니폼을 입고 골문을 지키기도 했다.
하지만 신도 무심하시지.
드디어 나아졌다 싶었을 때 또다시 찾아온 시련.
이식받은 신장의 부적합 판정과 재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은 것.
작은아버지로부터 또다시 신장 이식을 받았다.
하지만 그 사이 소속팀도 잃었다.
전남 드래곤즈도 꾸준히 차기석의 재기를 도왔지만 더이상은 힘들었다.
차기석 역시 "구단도 할 만큼 했다"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이후 K3리그 경주시민축구단과 부천FC를 거쳤던 차기석.
결국 2010년 은퇴를 선언한다.
은퇴 후 모교인 연세대 골키퍼 코치로 후배들을 지도했다.
선수로는 아쉬웠지만 그만큼 성공적인 지도자 생활을 꿈꿨다.
하지만 또다시 차기석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수차례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은 몸.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심지어 최근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까지 했다.
천만다행으로 의식을 되찾긴 했다.
포포투 인스타그램 링크를 자세히 보면 차기석 선수 계정도 확인할 수 있다.
@cha_kiseok
비공개 계정이라 곧바로 링크를 띄우지 못해 미안하다.
포포투 댓글도 좋고 우리쪽에도 좋고 어떤 방식이라도 좋다.
차기석 선수에게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주자.
개인적으로 학창 시절 인상깊었던 골키퍼 차기석.
어쩌면 국가대표 골키퍼 계보에 한 획을 그었을지 모르는 이름이다.
"비극을 희망으로 바꾼 골키퍼"라는 차기석의 말.
야축 관리자 이기타도 진심으로 응원한다.
#힘내라차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