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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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들
  • 발행 201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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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비경기는 축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팬들은 더비 경기 하나에 목숨을 걸고 죽을 듯 응원한다. 단순히 경기가 아닌 감정들도 솟구친다.


레알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엘 클라시코, 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의 데어 클라시코, 아스날과 토트넘의 북런던 더비, 리버풀과 에버튼의 머지사이드 더비, 선더랜드와 뉴캐슬의 타인위어 더비, AC밀란과 인테르의 밀라노 더비 등등… 이런 더비전에서는 선수들 사이에서의 감정도 격해진다. 피치 위에서 그들은 철천지 원수가 되고 적이 된다.


그래서 이런 더비팀들 간의 이적 금지는 불문율이 아닌 불문율이 되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선수들은 더 나은 조건을 위해, 혹은 경력을 위해 이런 팀들 사이에서 이동하곤 한다. 그리고 팬들은 그런 선수들을 배신자라 부른다. 이제부터 그러한 선수들을 살펴보려 한다.


 

1.루이스 피구




포르투갈 출신의 피구는 2000년 발롱도르, 2001년 FI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는 등 전설적인 레알마드리드 그리고 바르셀로나의 선수다. 후이 코스타, 주앙 핀투 등과 포르투갈을 이끈 피구는 스포르팅에서 경력을 쌓고 바르셀로나로 가게된다. 그는 4년동안 172경기를 뛰며 30골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문제의 2000년, 피구는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더비 라이벌인 레알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된다. 심지어 그는 바르셀로나의 주장이었다.


환멸감을 느낀 팬들은 이적 후 3년 동안이나 엘 클라시코 더비에서 그를 향해 수많은 물건을 던졌다. 돼지머리도 던져진 물건들 중 하나라고 한다. 오죽했으면 엘 클라시코 전 경기에서 일부러 레드카드를 받아 엘 클라시코를 결장했다는 소문도 있다. ?갈락티코 1기로 합류한 피구는 챔피언스리그, 리가 우승 두번을 따내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 2005년 인테르로 이적한 그는 2009년 은퇴하여 인테르의 홍보대사로 활동 중에 있다.


 

2. 솔 캠벨




2012년 은퇴한 캠벨은 토트넘에서 9년간 센터백으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토트넘에서 어릴 때 부터 커왔기 때문에 팬들은 그를 믿고 의지했다. 토트넘은 그런 그에게 주장직을 주며 팀의 상징으로 치켜세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캠벨은 2001년 북런던 라이벌인 아스날로 이적하였다.


토트넘 팬들은 그를 유다라 부르며 비난하였다. 토트넘에서 그는 토트넘을 떠날 일이 없다고 호언장담하였지만 자유계약이 풀리자 주급을 더 많이 주는 아스날로 이적료 한푼 없이 떠나버렸다. 그 후 5년 동안 아스날이 쌓은 가장 화려한 커리어에 일조하였다. 후에 포츠머스에서 3시즌을 보내고 4부리그의 노츠카운티로 이적하여 팬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한달만에 계약을 파기, 뉴캐슬로 이적하였고 그 곳에서 은퇴를 하게 된다.


 

3. 윌리엄 갈라스




이번에 은퇴한 전 프랑스 대표 갈라스는 런던에 3팀을 거쳐갔다. 처음 영국에서의 출발지는 런던의 첼시였다. 마르세유에 있던 그는 재능을 인정받아 첼시의 센터백으로 자리잡게 된다. 무리뉴 지휘 하에서는 2년 연속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맛보았다.


2006년 팀과의 갈등으로 그는 아스날로 이적을 한다. 그 당시 첼시 경영진이 애슐리 콜과의 맞교환+돈이라는 조건으로 이적을 시켰는데 이 일에 대해 무리뉴는 분노했다고 전해진다. 베르캄프의 10번을 물려받은 갈라스는 후에 주장직을 맡게되며 아스날의 상징이 된다.


하지만 팀의 내부갈등을 외부로 폭로한 그는 주장직을 박탈당하며 2010년 자유계약 신분으로 풀려난다. 놀랍게도 그의 다음 행선지는 더비 라이벌 토트넘이였다. 3시즌간 토트넘에서 활약한 후 호주로 팀을 옮겼고 올해 팀을 찾지 못해 37세의 나이로 은퇴를 하게 되었다.


 

4. 마리오 괴체




도르트문트의 팬들은 아직도 괴체라 하면 이를 박박간다. 온갖 별명을 다 떠안기도 했다. 유다가 약할 정도로 말이다. 그는 도르트문트의 성골 유스 출신이다. 8살이 되던 해 도르트문트 유스팀에 입단하였고 17세에 1군 무대를 밟았다. 클롭은 그를 믿고 1군 주요선수로 기용하였고 괴체는 그에 맞는 성과를 보여주었다. 2012년 괴체는 도르트문트와 2016년까지 계약을 연장하였고 그 딜에 바이아웃을 포함시켰다.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뮌헨은 그의 능력을 알아보고 바이아웃으로 그를 영입했다. 도르트문트와 바이에른 뮌헨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앞두고서 였기에 그 여파는 매우 컸다. 거기에 더해 괴체는 부상으로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결장을 한다. 이 일로 인해 그는 도르트문트 팬들 전부를 적으로 돌려세웠다. 그 다음 시즌 괴체는 친정팀을 상대하게된 경기에서 골을 기록한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뿐만 아니다. 그의 동생 펠릭스 괴체도 도르트문트를 떠나 뮌헨으로 팀을 옮기게 된다. 그는 이제 베스트팔렌주에서는 얼굴도 못 들고 다니지 않을까. 한 마디 덧붙이자면 그 다음 해 레반도프스키도 뮌헨으로 떠났는데 클롭은 이제 로이스까지 뺏길 위기에 처해있다. 불쌍한 클롭형…


 

5. 마이클 오언




에버튼 팬인 오언은 리버풀 유스 출신이다. 캐러거, 제라드 등의 선수들과 함께 황금세대로 불린 오언은 19세 나이에 득점왕을 차지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실력을 뽐냈다. 00시즌에는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개인커리어를 쌓았지만 팀이 별다른 성과를 못거두자 레알마드리드로 떠나버린다. 하지만 그 당시 레알마드리드는 호나우두, 라울같은 스타들이 즐비해 그 자리를 뚫고 자리를 잡지 못하였다. 게다가 그 해 리버풀이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전을 요구하다 지친 그는 뉴캐슬로 이적을 하게 된다. 뉴캐슬 첫 시즌 괴물같은 모습을 다시 보여주어 부활을 꿈꿨으나 부상에 사로잡혀 4시즌동안 겨우 70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하였다. 이마저도 교체가 대다수이다. 09년 자유계약으로 그는 리버풀의 더비 라이벌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호날두의 7번을 받아 이적하게 된다. 리버풀은 라이벌팀으로 자신들의 스타플레이어가 가는 것을 두려워 하였고 베니테즈 전 리버풀 감독에게 팬들과 선수들이 오언의 영입을 요구했으나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맨유에 와서도 그는 달라지지 못했다. 매 시즌 부상에 시달렸고 조커로 기용되다 후에는 치차리토, 베르바토프에 밀려 결국 방출로 이어졌다. 지금도 콥 들에게 많은 욕을 먹고 있는 상황인데 트위터로 리버풀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니 그는 리버풀이 친정이라는 것을 잊지 않은 모양이다.


댓글에서 요청한 선수들도 추가해서 정리해보았다.


2편 읽기 → 배신자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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