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되었더라면 역사에 남았을 '대형 이적설' TOP 5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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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되었더라면 역사에 남았을 '대형 이적설' TOP 5 (BBC)
  • 유스포
  • 발행 2018.08.09
  • 조회수 4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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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날두 아스날로 갈뻔했던거랑 루니 첼시 갈뻔했던것도 있었지

매년 이적시장마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이적설들이 항상 존재한다. 그 와중에도 '이 선수가???'라고 할 정도로 놀랄만한 이적을 보여주는 선수들이 있어왔다. 대표적으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 레알마드리드로 갔을때가 가장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적설이 난다고 해서 모두가 다 이적을 하는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번 기사에서는 BBC가 공개한?현실로 이뤄지지는 않은 대형 이적설을 소개하려고 한다.

1. ?카카 →맨시티

2009년 당시 AC밀란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있던 카카가?이적을 위해 움직인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만수르의?막대한 자본을 보유하게 된?맨체스터 시티가 카카 영입에 관심을 보였고, 이적료는 1억 800만 파운드(약 1,556억원)를 제안했다. 이 당시 AC밀란은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이적을 허락했고 맨시티와 합의까지 마쳤지만?밀란 팬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BBC는 “타이밍이 맞지 않아 성사되지 않았다. 맨시티가 제안한 금액은 지금 봐도 엄청나다. 킬리앙 음바페와 네이마르 수준”이라고 전했다. 맨시티행에 실패한 카카는 레알 마드리드로 전격 이적한다.

2.? 제라드 → 첼시

리버풀의 심장이자 영원한 캡틴이라는 수식어는 어쩌면?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리버풀의 레전드 스티븐 제라드도 이적설에 휘말린적이 있었다. BBC에 의하면?2005년 첼시가 제라드 영입을 추진했다. 당시 첼시의 감독이던 조제 무리뉴가 제라드에게 큰 관심을 보였고, 주급 10만 파운드(약 2억원)를 제안했다. 그러나 제라드의 거절로 무리뉴의 ‘스탬포드 브릿지 프로젝트’는 물거품이 됐다.

3.? 레반도프스키 → 블랙번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를 프리미어리그에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2010년 당시 블랙번은 레반도프스키 영입을 추진했었다. 당시 블랙번이 레반도프스키에게 제안한 이적료는 한화로 약 70억원 정도였다.

협상은?순조롭게 흘러갔고 이적에 가까워졌던 레반도프스키지만?화산이 이적을 가로 막았다. 당시 블랙번행 비행기를 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던?레반도프스키는 2번째 대안이었던 도르트문트 이적을 결정했고, 현재 월드클래스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4.? 셰브첸코?→ 웨스트햄

무결점 스트라이커 셰브첸코는 잉글랜드와 인연이 깊다. 1994년 당시 웨스트햄 이적 가능성이 있었다고 알려졌다. 당시 웨스트햄을 이끌던 해리 레드냅이 셰브첸코를 테스트했다. 그러나 인연이 닿지 않았고, 웨스트햄 이적은 없었던 일이 됐다.

웨스트햄으로 가지 않고 우크라이나 디나모 키예프에서 활약한 그는 AC밀란에서 세계 최고 스트라이커가 된다. 디나모 키예프에서 보여준 그의 활약은 센세이셔널 했고 우크라이나 역사에 남을 선수가 되었다. 12년 뒤 첼시로 이적했지만 디나모 키예프와 AC밀란에서 보여주었던 무결점의 모습은 결국 보여주지 못했다.

5.?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아스날

우승청부사 이브라히모비치가 벵거 감독과 함께 일할 뻔했다. 십대시절부터 두각을 보여준 이브라히모비치에게 아스날은 영입을 제안했다. 등번호 9번과 파격적인 지원을 보장했고 이브라히모비치 또한 이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벵거 감독의 이 한 마디가 그의 결정을 뒤바꿔버렸다.

그건 바로 '입단테스트'였다. 당시 뛰어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였으나 프리미어리그와 세계적인 무대에서 검증이 되지는 않았던 즐라탄이기에 벵거 감독으로서는 어찌보면 당연한 절차였다. 그러나 이브라히모비치는 “절대 안 된다. 즐라탄은 오디션을 보지 않는다”라며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BBC는 “만약 이브라히모비치가 아스널 선수가 됐다면 어땠을까. 상상만으로도 엄청나다”라며 아쉬워했다. 만약 즐라탄이 아스날로 이적해 등번호 9번을 달았다면 아스날의 9번의 저주는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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