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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거가 떠나보낸 7명의 선수들..

내 안의 작은 아이가 소리친 사건과 전력질주사건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듯…
야축특파원 유스포’s 한줄

아스날은 많은 선수들이 타팀으로 떠나간 사례가 많은 빅클럽 중 한팀이다.
그 중 벵거감독이 오랫동안 아스날 감독으로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미지는 벵거감독이 있을 당시에 생긴 이미지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벵거감독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전설적인 감독임에는 분명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벵거감독이 떠나보내게된 7명의 선수를 시기순으로 선정해보았다.

1. 니콜라스 아넬카

1997년 2월 17살의 아넬카는 벵거감독이 ‘최고의 재능’이라 극찬을 하며 50만 파운드에 파리생제르망으로부터 영입한 선수이다. ‘저니맨’이라는 별명을 가진만큼 아스날에서 2년정도의 시간을 보냈고 이후 레알마드리드, 파리생제르망, 리버풀, 맨체스터 시티, 볼턴, 첼시 등 임대를 포함하여 총 12개의 팀에서 선수생활을 보낸 선수였다. 아넬카는 실력만큼에 있어서는 누구나 인정을 하는 선수였다. 골 결정력, 피지컬, 속도, 움직임 등 좋은 스트라이커가 갖추어야 될 능력을 갖춘 훌륭한 선수였다.

2. 애슐리 콜

2000년대 잉글랜드와 세계 정상급 왼쪽풀백으로 군림했던 애슐리 콜은 아스날 유스 출신으로 19세의 나이로 1999년부터 아스날의 1군팀에서 활약을 시작했다. 2000년에 들어서 주전으로 활약하기 시작했고 그가 맹활약했던 2000년~2006년은 아스날의 영광의 시대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애슐리 콜은 주급인상 문제로 불화를 겪으며 라이벌 클럽인 첼시로 이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불법접촉 논란이 있었던것은 아직도 화자가 되기도 한다.

3. 티에리 앙리

 
 

1999년 유벤투스에서 암흑기를 보내고 있던 앙리를 벵거감독은 영입하게 된다. 벵거는 왼쪽 윙어에서 뛰던 앙리를 스트라이커로 전환시켜 그를 ‘아스날의 킹’으로 만들었다. 그는 아스날에서만 175골을 기록하였다. 앙리는 아스날에서 최고의 파트너 베르캄프와 함께 팀을 이끌었고 프리미어리그에서만 4번의 득점왕을 차지하였다. 2005/2006 시즌에는 비에이라가 떠난 후 주장을 맡으며 유벤투스와 레알마드리드를 차례로 격파하며 챔피언스리그 결승으로 팀도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앙리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제외하고 프리미어리그, FA컵, 유럽선수권대회, 월드컵 등 모든 우승컵을 들어본 앙리였기에 더 간절했다. 결국 2007년 앙리는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된다.

4.아데바요르

벵거감독은 2006년 모나코에서 뛰던 아데바요를 영입하게 된다. 이적 첫해에는 티에리 앙리에게 밀려 벤치 신세였지만 앙리가 이적한 후 기회가 찾아왔고 여기서 부터 아데바요르는 자신의 최전성기를 보내게 된다. 2007/2008시즌 총 30골을 넣으면서 아스날의 상승세에 한몫을 했다. 2008/2009시즌 부상을 당하였음에도 14골정도의 골 결정력을 보여주며 아스날에서 그의 존재감을 입증했다. 그러나 그는 아스날에서 주급 문제로 꾸준하게 구단과 갈등이 잦았고 이적시장이 열릴 때마다 다른 구단과 링크가 연결되면서 팀에 대한 충성심을 많이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 팀의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치는 아데바요르를 벵거 감독은 이적시키기로 결심하고 아데바요르는 2009년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하게 된다.

5. 세스크 파브레가스

아스날의 상징적인 선수 중 하나였던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의 선수로 어린 나이지만 소속팀에서의 주전을 원하였고 이러한 부분을 벵거감독이 잘 설득시켜 2003년 아스날로 이적하게 된다. 파브레가스는 비에이라와 질베르투 실바와 경쟁을 하며 성장해갔다. 16세 177일이라는 아스날 최연소 출장기록을 세웠고 경쟁선수들의 부상과 비에이라의 유벤투스 이적으로 그는 팀의 주전으로 도약하게 된다. 파브레가스는 어린 나이지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도 출전하며 좋은 경험을 쌓아가며 점차 팀의 정신적 지주의 역할도 가능하게 된다. 2007년 티에리 앙리가 떠나 불안정한 팀을 리그 3위까지 끌어올렸다. 파브레가스는 팀의 에이스이자, 전술적인 핵심의 선수였다. ‘파뿌리’라는 별명을 가질만큼 넓은 시야, 창의성, 경기운영능력, 패스능력 등은 가히 돋보였다. 갈라스가 이적한 이후 그는 아스날의 주장까지 역임하며 벵거 감독의 무한한 신뢰를 받는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아스날에서 8년의 시간을 보낸 파브레가스는 점차 팀의 성적에 대한 불만을 가지게 되었고 그는 결국 우승컵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바르셀로나로 복귀를 하는 이적을 하게된다.

6. 반 페르시

반 페르시는 페예노르트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선수이다. 능력있는 젊은 스트라이커라는 소문이 난 반 페르시는 2004년 아스날의 영입제의를 받고 아스날에 입단하게 된다. 입단 초 몇년간은 많은 기회를 받지 못한 반페르시였지만 점차 기회를 잡아가며 베르캄프, 티에리 앙리, 아데바요르가 팀을 떠난 이후에는 팀의 주전 공격수로 자리잡게 된다. 이때부터 반 페르시는 본격적으로 아스날의 에이스 스트라이커로 활약하게 된다. 잦은 부상을 당하던 선수였지만 경기에 나오게 되면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였다. 그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소속팀에 대한 충성심이 좋은 선수였다. 파브레가스가 떠난 이후 팀의 주장까지 맡으며 벵거감독은 자신의 신뢰를 무한하게 보내게 된다. 이러한 신뢰에도 불구하고 반페르시는 우승컵에 대한 열망으로 아스날에게 공식적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의 이적을 요청하게 된다. 결국 2012년 반페르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을 하게된다. 맨유로의 이적 후 첫 인터뷰에서 “내 안의 작은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발언은 아직까지도 화자되는 이야기다. 반페르시의 이적으로 아스날의 주장=이적 이라는 공식의 대표사례를 추가하였다.

7. 알렉시스 산체스

산체스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며 그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리게 된다. ‘메없산왕’이라는 명칭이 있을만큼 산체스는 바르셀로나에서 주전경쟁을 항상 하던 선수였지만 경기장에 나올때만큼은 확실한 실력을 보여주는 선수였다. 그러나 수아레즈의 영입설과 함께 산체스는 2014년 아스날로 이적하게 된다. 입단 이후 외질과 함께 팀의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산체스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투지 넘치는 플레이가 인상적인 선수였다. 그는 항상 팀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수였고 팀 전체의 부진이 있어도 산체스는 개인능력으로 팀의 승리를 이끄는 일명 ‘멱살캐리’를 하는 선수였다. 그러나 산체스는 팀의 성적에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고 점점 팀에 대한 애정이 식기 시작했다. 그러한 산체스에게 맨체스터 시티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영입제의를 시작했고 결국 산체스는 2018년 미키타리안과 스왑딜 형식으로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 입단하게 된다.

 
 
 

Categories:   축구뉴스, 칼럼, 해외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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