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르디올라는 감독이 되기전에 어떤 선수였을까???
상태바
과르디올라는 감독이 되기전에 어떤 선수였을까???
  • 유스포
  • 발행 2018.04.24
  • 조회수 2387
이 콘텐츠를 공유합니다
w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의 전형적인 유스 아카데미 출신으로 비록 원 클럽 맨은 아니지만, 말 그대로 FC 바르셀로나의 레전드이자 뼛속까지 바르셀로나의 성향을 가진 선수였다.

그는 바르셀로나 B팀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1990년 바르셀로나 성인팀의 데뷔를 한 과르디올라는 1990년부터 2001년까지 선수생활 대부분을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는데 바르셀로나에서만 총 379경기를 뛰었다.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에서 뛰던 시절 총 6번의 리그 우승과 2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 그리고 1번의 유러피언컵(현재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플레이메이커 성향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면서 그는 요한 크라위프가 이끄는 '드림팀'의 키 플레이어로 활약하였다. 과르디올라는 경기조율 능력과 패스능력을 인정받는 선수였다. 수비력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당시 로날드 쿠만 중심으로 이루어진 포백 라인의 앞을 보호하고 공을 잡고 경기를 정교하게 전개시키는 정확한 패스 능력은 뛰어난 선수였다. 이러한 역할을 했던 피를로, 사비 알론소의 선조버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르디올라의 장점은 감독이 된 현재에도 그가 맡는 팀의 전술적 요소에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과르디올라가 바르셀로나에서 뛰던 당시는 팀에 외국인과 바스크 출신의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던 시기였다. 카탈루냐 출신이 몇 안되던 시기었기에 카탈루냐 출신이었던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의 팬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지지는 1997년 당시 루이스 반 할 감독의 부임과 함께 과르디올라가 주장으로 역임되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과르디올라는 국가대표팀에서도 쏠쏠한 활약을 선보였다. 자국에서 개최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는데 중심 역할을 톡톡히 했고 이후 1994년 미국 월드컵, 유로1996과 유로2000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특히 유로2000에서의 활약은 지단, 피구, 라울, 앙리, 클루이베르트, 토티, 칸나바로, 네스타, 드사이, 블랑, 비에이라 등과 함께 UEFA 토너먼트 올스타 팀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재밌는 것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카탈루냐 독립문제와 관련하여 과르디올라는 스페인 국가대표팀과 카탈루냐 대표팀, 두 대표팀에서 동시에 뛰기도 하였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에서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2001년 바르셀로나의 정신적 지주였던 과르디올라는 주장역임 이 후 부상에 시달리며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였고 결국 30세가 되었을 당시에 이적을하게된다. 이적 당시 많은 빅클럽들이 그를 영입하려 하였다.

EPL과 세리에A의 많은 명문팀들의 제의에도 불구하고 과르디올라는 새로운 전술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세리에A에 브레시아 칼초로 이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과르디올라는 약물 복용으로 기소가 되는 등 (나중에 무죄 처리)과 결합하여 출전정지 징계를 받으며 많은 경기를 뛰지 못하였고 이후 AS로마로도 이적을 하지만 이마저도 순탄치 못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세리에A에서의 성공적이지 못한 삶을 뒤로하고 과르디올라는 중동 리그와 멕시코 리그에서 뛰며 2006년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과르디올라와 무리뉴 감독의 오랜 인연에 관련한 사항을 추가적으로 넣어봤는데 무리뉴 감독은 바비롭슨과 루이스 판 할이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있을 당시 바르셀로나의 통역관으로 일을 하였다. 사진을 보면?과르디올라랑 꽤 가까운 사이로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세계 최고의 감독이자 라이벌이?된 그들이지만 한 때는 한 팀에서 일을 하였던 시절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copy_cc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