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호의 월드컵, 이제 곧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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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호의 월드컵, 이제 곧 시작한다
  • 발행 201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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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축동이 파헤쳐본다, 월드컵 32 국?- 4편 : 대한민국


 

1990년 2월 4일 노르웨이와의 친선경기에서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으니 벌써 24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반은 더 변한 시간 동안 그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한국 축구의 중심에 서 있다.?


이제 그는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의 ‘지휘’라는 중책을 맡게 됐다. 2002년에 광주에서 그랬던 것처럼, 2012년에 런던에서 그랬던 것처럼 또 다시 큰 기대를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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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로 뛰던 게 엊그제 같은데>


 

강한 믿음과 굳은 신뢰로 출발한 홍명보호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부분은 자신 있게 할 수 있다.
훌륭한 감독이 되고 안되고의 문제를 떠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하는지다.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역할에 충실하겠다."
2009. 2. 23


 

지난 2009년 2월, 대한민국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신임감독으로 선임된 홍명보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당시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홍명보 감독 체제의 청소년 대표팀을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이어간다는 계획을 세웠고, 본격적인 ‘홍명보호’의 출항을 알렸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선수를 키워내는 클럽팀과 달리 짧은 기간 동안 조직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대표팀의 특성상 경험 많은 지도자가 대표팀 감독을 맡아야 한다는 우려도 있었다. U-20 월드컵이 7개월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감독을 교체하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스타플레이어 출신 감독은 명감독이 되기 쉽지 않다는 농담은 보너스였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그 모든 우려와 걱정을 예상했다는 듯 내 역할에 충실할테니 걱정 말라고 당부했다.


 

선수 시절부터 그는 함께하는 누군가에게, 아니 그저 그의 플레이를 TV로 지켜보는 이에게조차도 강한 믿음과 굳은 신뢰를 주는 선수였다. 그리고, ‘초짜 감독’ 홍명보 역시 그런 감독이었다. 홍명보 감독이 꺼낸 그 말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강한 믿음과 굳은 신뢰가 깊숙이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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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대표팀 주장에서 월드컵 대표팀 주장까지 맡게 된 구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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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팀 중 최약체로 꼽히던 바로 그 팀

 

2009년의 홍명보호는 역대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팀 중 최약체로 평가 받았다. 당시 K리그 신인상을 거머쥔 이승렬과 제주의 신성 구자철을 제외하면 딱히 아는 이름이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가 등장했다’는 언론의 관심을 몰고 다니며 크게 활약했던, 이동국, 이천수, 최성국, 정조국, 박주영, 이청용 등으로 이어지며 국민의 관심을 크게 받았던 이전의 청소년대표팀에 비하면 선수단의 중량감이 떨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 해 9월 이집트에서 열린 U20 월드컵. 독일, 카메룬, 미국과 함께 이른바 ‘죽음의 조’에 편성될 때까지만 해도, 이전 대표팀이 그랬듯 좋은 성적은 기대하지 못했다(아니, 안했다). 기대를 모았던 기성용의 차출도 어렵게 됐고, 프로위주로 구성된 다른 나라와 달리 홍명보호는 아마추어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절반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역대 최약체’라는 오명 속에서도, 이전만 못한 무관심 속에서도 그들은 꿋꿋했다. 그리고, 그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달랐다. 남북 단일팀으로 나섰던 1991년 포르투갈 대회 이후 18년 만의 8강 진출, 한국 단일팀으로서는 1983년 멕시코 대회 4강 이후 최고의 성적이었다. 비록 8강에서 가나에 아쉽게 패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지로 많은 이들의 감탄을 끌어냈다(8강에서 대한민국을 꺾은 가나는 끝내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FIFA는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Surprise, Surprise’라는 기사를 올리며 한국 대표팀의 놀라운 선전에 박수를 보냈다.


 


?<지금이야 아는 선수들이 많이 보이지만 당시 이들은 아무도 알아보지 않는 대학생, 프로 신인 선수들에 불과했다>


 

김영권, 홍정호, 오재석, 김보경, 박종우, 김민우, 박희성 등 당시 대학생이었던 선수들이 홍명보호의 주축이 됐다. 프로 신참내기에 불과했던 이승렬, 김승규, 이범영, 윤석영, 구자철, 조영철 역시 ‘홍명보의 아이들’의 멤버로서 그 역할에 충실했다. 개인이 갖고 있는 기량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선수들은 홍명보가 원하는 그 무언가를 언제나 성실하게 수행했다. 모든 여건이 최고도 아니었고 스타 플레이어도 없었지만 홍명보는 이들을 톱니바퀴처럼 조련했다. 분명 이 팀은 홍명보 개인의 팀이 아니라, 참여하는 모든 이가 함께 꾸려나가는 하나의 팀이었다.


 

계속 손발을 맞춰온 선수들과 목표를 함께 하고 있다

 

"지금 맡고 있는 역할이 중요하다.
지난해부터 손발을 맞춰온 어린 선수들과 목표를 같이 하고 있다. 그 목표를 향해 그렇게 가고 싶다.
아시안게임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은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내가 할 일이고 나의 책임감이다."
2010. 7. 2


 

지난 2010년, 대한민국 월드컵 역사상 최초 원정 16강의 위업을 거둔 허정무 감독의 후임으로 그의 이름이 거론되자 홍명보 감독이 꺼낸 말이다. 당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겸임하고 있었던 그는 현재 목표에 충실하겠다며 A대표팀 제안을 고사했고, 결국 축구협회는 홍명보 감독을 후보군에서 제외했다.


 

“지난해부터 손발을 맞춰온 어린 선수들과 목표를 같이 하고 있다”는 내용이 가슴을 울렸다. 올림픽 대표팀과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함께 맡고 있었기 때문에 A대표팀까지 맡게 되면 탄력적이고 원활한 팀 운영이 가능했지만, 그는 현재의 목표에 집중하겠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2011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조광래 감독의 갑작스러운 경질로 대표팀 감독이 공석이 되자, 어김없이 그의 이름이 다시 거론됐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런던올림픽 최종예선 역시 순항하고 있었기에 국내에서 홍명보 감독만한 지도자를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청소년 대표팀과 아시안게임 대표팀, 그리고 올림픽대표팀 감독직을 거치며 축구협회 내부 사정에 밝다는 점, 무명에 가까운 선수들을 직접 발탁하고 길러내 A대표팀에서 활약할 정도의 수준까지 끌어올렸다는 점 역시 그가 적임자로 꼽힐만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 번 A대표팀 감독직을 고사했다. 이유는 지난해와 같았다. “내가 처음 가졌던 생각에는 흔들림이 없다. 2009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옆에 있는 어린 선수들과 오직 2012년 런던 올림픽을 목표로 달려왔다”며 런던 올림픽에 집중할 뜻을 밝혔다. 그는 또 다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그리고 1년 뒤, 2009년부터 시작한 홍명보와 그의 어린 선수들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올림픽에서 첫 메달을 거머쥐었다.


 


??<월드컵에서도 그의 웃음을 볼 수 있기를>


 

믿음과 신뢰로 출발한 이들과의 월드컵이 시작한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확실한 동기부여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봤는데,
2018년 (러시아 월드컵)까지 협회와 계약했으면, 대표팀을 맡는 나의 자세는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월드컵을 준비하고 싶었다. ?
지금부터 대한민국 축구는 변화와 혁신으로 제2의 도약기를 맞이할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
2013. 6. 25


 

지난 2013년 6월, 축구협회의 오랜 구애 끝에 최강희 감독의 후임으로 A대표팀 감독에 선임된 홍명보 감독이 꺼낸 말이다. ?역대 대한민국 감독 중 취임과 동시에 5년 이상의 계약을 맺은 사례는 없었으나, 상대가 홍명보라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브라질 월드컵은 단 1년 밖에 남지 않은 상황, 한국 축구의 향후 장기적인 비전을 그리기 위해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준비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는 여론도 컸다.


 

그러나 그는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다가올 월드컵을 준비하고 싶었다. 그리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브라질 월드컵에 쏟아부을 것을, 약속했다. 지난 청소년월드컵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그랬던 것처럼.

 

2009년 출항했으니 벌써 햇수로만 6년이 됐다. 청소년대표팀에서 아시안게임, 올림픽을 거쳐 월드컵까지 왔다.?햇병아리에 불과했던, 역대 청소년대표팀 중 최약체로 꼽혔던 그들은 역대 월드컵 대표팀 중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홍명보 감독도 그들과 함께 성장했다.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온 홍명보호의 브라질 월드컵을 지켜봐 주고 응원해 줄 시기가 드디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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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최상의 컨디션으로 팬 여러분께 좋은 경기를 보여드리고 싶었던 그 마음은
한 번도 변함이 없었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전 세계 축구 선수들의 꿈의 무대인 월드컵을 네 번이나 경험할 수 있었던 것도 저에게는 과분한 영광이지만,
그동안 꿈에서나 그려왔던 16강 진출에 이어 4위를 달성하게 된 것도 제 평생 잊을 수 없는 영광입니다.
저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국민과 팬 여러분 덕택에 지금의 홍명보가 있어왔기에,
다가올 미래도 한국 축구와 선후배, 동료 그리고 국민 여러분을 위하여 바쳐지리라 확신합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한 저입니다만, 모두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홍명보가 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고 채찍질 해주시기 바랍니다."
2004. 10. 14


 

지난 2004년 미국 로스앤젤러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은퇴를 공식 선언한 홍명보 ‘선수’가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전한 메시지 중의 일부이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국민 리베로’의 은퇴 소식에 안타까워하고 있던 국민에게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냈는데, 10년이 지난 후에 다시 읽어도 메시지 내용이 귓전을 울린다.


 

10년이 지난 지금, “다가올 미래도 한국 축구와 선후배, 동료, 그리고 국민 여러분을 위하여 바쳐지리라 확신합니다”라던 그의 말은 아직 유효하다. 다가올 미래를 한국 축구와 국민을 위해 바치겠다던 그의 다짐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18년 만의 청소년월드컵 8강 진출과 런던올림픽 동메달이라는 금자탑을 쌓은 그와 그의 어린 선수들이 이번 월드컵에서 어떤 결과를 이루어낼까. 다시 한 번 뜨거운 6월을 안겨다 줄 수 있을까?


 

홍명보호의 월드컵이 이제 곧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신뢰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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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FA 랭킹 ? 55위(2014년 5월 기준)

▲ 월드컵 본선 진출 횟수 ? 9회(브라질월드컵 포함)

▲ 월드컵 최고 성적 ?4위(2002년 한일 월드컵)

▲ 감독 ? 홍명보

 

대한민국 23인 최종 엔트리



▲ GK = 정성룡(수원), 김승규(울산), 이범영(부산)


▲ DF = 김진수(니가타), 윤석영(QPR), 김영권(광저우), 황석호(히로시마), 홍정호(아우구스부르크), 곽태휘(알 샤밥), 이용(울산), 김창수(가시와)


▲ MF = 기성용(선덜랜드), 하대성(베이징), 한국영(가시와), 박종우(광저우 푸리), 손흥민(레버쿠젠), 김보경(카디프시티), 이청용(볼턴), 지동원(아우구스부르크)


▲ FW = 구자철(마인츠), 이근호(상주), 박주영(왓포드), 김신욱(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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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축동's 월드컵 파헤치기 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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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드록신에서 야야신으로 - 코트디브와르
2편 호날두와 친구들의 로얄로드 - 포르투갈
3편 이제는 ?월드컵 단골 -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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