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널 벵거 감독 최고의 아웃풋 =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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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널 벵거 감독 최고의 아웃풋 = 대통령?!!!
  • 최명석
  • 발행 2017.12.29
  • 조회수 1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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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비유럽인 FIFA 올해의 선수 겸 발롱도르 수상자이자 유일한 아프리카 출신 수상자

12월 28일(현지시각) 서아프리카의 빈국, 라이베리아의 새 대통령이 당선됐다.

조지 웨아(51세)

처음 그의 이름을 알게된 건 피파 97. AC밀란에 괴물 같은 능력치를 가진 선수를 발견했는데 그가 조지 웨아였다. 거의 모든 능력치가 완벽했던 선수로 기억한다. 이름도 처음 들어봤고, 실제로 본 적도 없었다. 나중에 첼시에서 잠시 임대로 뛰었을 때 봤던 것 같은데 크게 기억은 나질 않는다..그정도 기억.

 

블랙 다이아몬드, 전설의 시작

조지 웨아는 라이베리아의 수도 몬로비아 출신으로 1981년 15세 때 당시 3부 리그 소속 지역 축구 클럽인 영 서바이버스 클래리턴과 계약하며 골키퍼로 축구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골을 넣는 것에 대해 즐거움을 느끼게 되면서 공격수로 전향

아프리카에서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사실상 무명인 상태의 조지 웨아를 발탁하여 국제무대로 데려와서 성장시킨 인물은 아르센 벵거였다. 벵거는 아프리카로 직접 가서 조지 웨아의 모습을 수차례 지켜보았고, 1988년 아르센 벵거 감독이 이끄는 AS 모나코로 이적하였다.

벵거는 웨아에게 "열심히 하면 너는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다."고 격려했다. 그리고 진짜 그렇게 되었다.

후에 조지 웨아는 밀란에서 발롱도르를 수상하고 그 공을 벵거에게 돌렸다. 벵거는 자신이 발탁한 선수 중 가장 대단한 선수로 아직도 웨아를 꼽는다.


"웨아는 놀라운 선수다. 나는 웨아만큼 피치에서 폭발력을 지닌 선수를 본 적이 없다." - 아르센 벵거

"조지 웨아는 내 선수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선수이자 나의 우상이다." - 티에리 앙리


 

조지 웨아는 모나코에서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1991년 쿠프 드 프랑스에서 우승, 이듬해에는 팀을 UEFA 컵 위너스컵 결승전으로 이끌었다.

모나코에서 4시즌 동안 102경기에 출장해 47골을 기록.

1992년 파리 생제르맹 FC으로 이적. 이적한 뒤 첫 시즌인 1992-93시즌에 쿠프 드 프랑스에서 우승하였고, 1993-94 시즌에는 리그 앙 우승, 1994-95시즌에는 쿠프 드 프랑스와 쿠프 드 라 리그에서 우승하는 등 파리SG에서 수많은 타이틀을 획득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파리 생제르맹에서 3시즌 동안 96경기에 출장해 32골을 기록.

1995년 유럽과 남미 출신이 아닌 대륙 출신이며 아프리카인으로서 처음으로 발롱도르를 수상

같은 해 FIFA 올해의 선수상도 수상

3번째의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선수상 수상(1989년, 1994년, 1995년)

1995년 여름 AC 밀란으로 이적.

경이적인 신체 능력을 보여주며 "블랙 다이아몬드"라고 불렀다.

1996년 9월 8일 베로나 전에서 80m를 질주하여 넣은 골은 그의 클래스를 보여준다. 이 골은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 중 하나로 여겨진다.

밀란에서 2회 리그 우승을 이끌며 5시즌 동안 114경기에 출장해 46골을 기록.

 

인류 역사상 최초의 프로 스포츠 선수 출신 대통령

은퇴 후 내전으로 상처받은 조국 라이베리아를 위해 조지 웨아 기금을 설립하는 등 라이베리아 유니세프 친선 대사로 활동했다.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해 2005년 라이베리아 대통령 선거에 민주변혁회의(CDC) 후보로 출마했으나 패했다. 2011년 부통령에도 낙선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도전!

"저는 패배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저는 승리를 확신하고 이길 겁니다." - 조지 웨아

결선 투표결과 61.5%의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라이베리아는 73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적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축구영웅에서 민주화의 영웅이 된 조지 웨아!

라이베리아에서 가장 성공적인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

*출처: 나무위키, 유튜브,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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