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 규정과 함께 보는 야누자이의 국적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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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규정과 함께 보는 야누자이의 국적 선택
  • 발행 201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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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신성 아드난 야누자이(19)가 결국 벨기에를 선택했단다. 오는 6월 열릴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과 맞붙게 될 벨기에 대표팀의 마르크 빌모츠 감독은 지난 24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야누자이가 벨기에 대표팀과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는데, 한 국가의 대표팀 수장이 축구협회의 공식 발표가 있기도 전에 SNS로 이 기쁨(!)을 미리 알린 걸 보면 야누자이에게 벨기에 유니폼을 입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야누자이 본인은 벨기에 태생이지만 아버지는 코소보, 어머니는 알바니아 출신이고, 할아버지는 터키, 할머니는 세르비아 출신이다. 다들 잘 알다시피 여러 국가를 선택할 수 있는 그의 조건 때문에 잉글랜드 대표팀의 호지슨 감독, 크로아티아 U21 대표팀의 수사크 감독을 비롯해 여러 국가에서 야누자이에게 군침을 흘렸다. 그동안 그가 어느 국적(엄밀히 말하면 국적이 아니라 축구협회)을 선택할 것이냐를 두고 축구팬들 역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요새 맨유에서 꾸준히 나오지는 못하는 거 같던데 인기가 꽤 좋나보다).


 

하여튼, 도대체 야누자이는 이렇게 많은 국가들의 러브콜을 어떻게 받을 수 있었을까? 단순히 그의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고향이 그가 국가를 선택하는 데 이런 영향을 끼친 걸까? FIFA 규정을 토대로 야누자이의 사례를 분석해봤다.


 

FIFA에서 정의하는 국가대표란?

 

대개 스포츠의 모든 종목에서는 ‘국가대표’라는 용어가 많이 쓰인다. 축구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인데, 이를 엄밀히 해석해보면 축구에서는 ‘국가대표’라는 용어보다는 ‘협회대표’라고 쓰는 게 적확할 것 같다. 대개 1개국 1개 축구협회 원칙에 따라 한 국가에 한 개의 축구협회가 존재하기 때문에 ‘국가대표’라고 써도 무관하지만, 영국(웨일즈,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이나 중국(중국, 홍콩, 마카오)과 같이 국적 하나로 여러 개의 협회를 공유하는 국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가를 대표한다는 것은 정말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국가를 대표할 만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자만이 국가를 대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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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규정을 자세히 읽어보면 FIFA는 국가와 협회를 Nationality와 Association이라고 표현해 국가와 협회를 분명히 구분하고 있으며, 대표팀 선수는 국가를 대표한다고 하기보다는 협회를 대표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 야누자이의 ‘국적선택’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은 ‘협회선택’이라고 하는 게 더 올바르고 정확한 표현이라는 게 내 주장이다.


 

같은 관점에서 계속 얘기한다면, 국가와 협회는 엄연히 다른 부분이기에 ‘잉글랜드 국가대표’는 엄밀히 말하면 틀린 표현이다. 잉글랜드는 영국(United Kingdom)이라는 국가를 형성하는 지역 중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웨일즈의 긱스와 벨라미, 잉글랜드의 클레버리, 스터리지가 단 하나의 이름으로 모일 수 있었던, 영국을 이루는 4개의 축구협회가 단일팀으로 2012 런던 올림픽에 출전했던 ‘영국 국가대표’가 엄밀히 말해 옳은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엄밀하고 정확하고 세세하게 말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잉글랜드 국가대표’라고 쓴다 해서 못 알아듣는 사람은 없으니.


 

아무튼 국적선택이고 협회선택이고 간에, 야누자이가 여러 나라의 축구협회를 두고 저울질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여러 개의 국적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뛰어난 실력 때문일 것이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국적을 여러 개 가진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대표팀 유니폼은 누가 입을 수 있을까?

 

FIFA Statues(우리나라 말로 하면 FIFA 정관 정도?) 2013년도 판을 살펴보면, 61페이지부터 ‘ REGULATIONS GOVERNING THE APPLICATION OF THE STATUTES(우리나라 말로 하면 FIFA 정관의 시행과 관련된 규정 정도?)’가 시작된다. 이 규정의 5조부터 8조에서 ‘챕터3 : 한 팀을 대표해서 뛰기 위한 자격 - 한 선수의 이중국적, 새로운 국적획득, 그리고 협회변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5조


 

이 규정 5조 1항에서는 ‘어느 한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협회를 대표하는 팀에서 뛸 자격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뭐, 당연한 내용이다. 그 나라 국민이 그 나라의 협회를 대표하는 선수가 될 수 있지 누가 되겠는가. 따라서 야누자이가 태어난 곳은 벨기에, 본래 국적도 벨기에이므로 야누자이는 벨기에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을 자격이 ‘원래’ 있다.


 

야누자이의 사례와는 별개의 이야기인데, 이 5조 1항은 영국과 관련해 재밌게 해석될 수 있다. 앞서 서술했듯 영국에는 4개의 협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국인은 5조 1항에 따라 웨일즈,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중 하나의 대표선수가 될 수 있다. 다들 알겠지만 어린 시절의 ‘영국인’ 긱스가 웨일즈와 잉글랜드를 놓고 고민을 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5조 2항에서는 ‘한 협회의 대표 유니폼을 입고 공식 경기에 나섰던 선수는 다른 협회의 유니폼을 입고 국제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수의 협회변경에 대한 기본규정이다. 벨기에 청소년대표팀의 호출을 수차례 받았지만 이를 늘 거절해 대표팀 출전 경력이 없는 야누자이에게는 이 규정이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야누자이는 본 국적인 벨기에 외에 다른 나라의 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수 있는 상태였다.


 

야누자이는 왜 많은 국가를 선택할 수 있었을까?

 

규정 7조는 ‘새로운 국적의 획득’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 규정은 한 선수가 새로운 국적을 획득하기 위해선 네 가지 조건 중 하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선수 본인이 그 협회의 지역에서 태어나거나, 엄마나 아빠가 그 협회의 지역에서 태어났거나,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그 협회의 지역에서 태어났거나, 선수 본인이 그 협회의 지역에서 만 18세 이후로 5년 이상 꾸준히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 중 하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그 네 가지 조건이다.


 

7조


 

이 규정 때문에 그동안 기자들이 야누자이를 그렇게 괴롭혔던 것이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야누자이 본인은 벨기에 태생이고 아버지는 코소보, 어머니는 알바니아 출신, 할아버지는 터키, 할머니는 세르비아 출신이다. 그리고 야누자이가 만 18세 이후로 잉글랜드에서 5년 이상 거주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잉글랜드 대표팀 호지슨 감독마저 욕심을 냈던 거다. 규정 하나 덕분에 순식간에 6개의 협회를 저울질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잉글랜드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 18세 이후로 5년 이상 꾸준히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 때문인데, 야누자이가 지난 2011년부터 잉글랜드에서 거주했지만 만 18세가 된 것은 2013년이기 때문이다. 야누자이는 2018년이 되어야 만 18세 이후로 잉글랜드에서 5년 이상 거주하게 되기 때문에 잉글랜드 대표팀 유니폼을 입으려면 앞으로 4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올 2월 나온 여러 기사들을 보면 ‘FIFA 규정에 따르면 야누자이는 앞으로 2년 6개월여를 더 잉글랜드에 체류할 경우 귀화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많이 적으셨던데, 2년 6개월이 아니라 4년이다.


 

만약에 야누자이가 벨기에 청대에서 뛴 경력이 있었다면?

 

사실 야누자이가 벨기에 청소년 대표팀에서 뛴 경력이 만약에 있었다 하더라도 야누자이의 협회변경은 가능한 일이었다. 8조 1항 a)에서 명시하고 있는 규정 때문인데, 이 규정에서는 “선수가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거나, 새로운 국적을 취득했거나, 국적 때문에 여러 개의 협회를 대표할 수 있다면, 단 한 번만, 그가 현재 협회를 대표해 "A" 레벨의 국제 공식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다는 조건 하에, 그리고 혹시 그가 국제경기에 출전했다면 출전 첫 경기 당시 그가 새로 뛰고자 하는 협회의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조건 하에, 협회를 바꾸도록 신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8조


 

이 규정은 꽤 재밌는 규정이다. 두 가지의 단어 때문인데 하나는 <“A" 레벨>이라는 단어이고, 나머지 하나는 <국제 공식 경기>라는 단어다. 우선 A레벨부터 살펴보자. A레벨은 여러분이 잘 아는 그 레벨이다. 협회의 A레벨, 성인 대표팀을 뜻하는 표현이다. 따라서?야누자이가 만약 벨기에 청소년 대표 경력이 있다 하더라도 A레벨의 경기를 뛰지 않았기 때문에 야누자이는 협회 변경이 가능하다.


 

다음으로 국제공식경기다. A레벨의 경기도 종류가 있다. A레벨 경기는 FIFA에서 주관하는 Official Match와 일반 Friendly Match로 나뉘는데, 위의 규정에서 국제공식경기라 함은 FIFA에서 주관하는 Official Match를 의미한다. Official Match에는 월드컵 본선과 예선, 유럽선수권대회 본선과 예선, 아시안컵 본선과 예선, 컨페드레이션스 컵 등 FIFA 및 각 대륙연맹이 주관하는 컵 대회가 포함된다. 반면,?A레벨에서 뛰었다 하더라도 일반 Friendly Match에 나선 경우에는 이 규정에 해당되지 않는다.?일례로, 지난 2013년 3월 브라질 A대표팀 소속으로 이탈리아와의 친선경기에 나섰던 디에고 코스타는 2013년 7월 스페인 이중국적을 획득한 이후 스페인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A레벨에서 뛰었지만 FIFA에서 주관하는 Official Match에서 뛰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이 규정은 야누자이가 벨기에대표팀 유니폼을 입게 되더라도 그가 벨기에 A대표팀에서 Official Match에 출전하지 않는 이상 그가 다른 나라의 유니폼을 입기 위해 FIFA에 협회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머리가 아프다.


 


브라질 국가대표로 뛴 경력이 있는 디에고 코스타는
스페인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는데 성공했다.


 

위 규정의 “혹시 그가 국제경기에 출전했다면 출전 첫 경기 당시 그가 새로 뛰고자 하는 협회의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조건 하에”라는 문장도 역시 중요하다. 이는 야누자이가 벨기에 청소년 대표팀에서 혹시 뛰었다면, 그리고 만약 벨기에가 아니라 터키나 세르비아로의 협회 변경을 원했다면, 벨기에 청소년 대표로서 첫 경기를 뛸 당시 터키나 세르비아의 국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FIFA 규정에 따라 터키와 세르비아를 비롯해 6개의 국적을 '획득'한 야누자이는 이미 이 규정과도 상관이 없다. 그가 만약 벨기에 청소년 대표팀에서 뛰었다 하더라도 이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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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자이가 다른 나라를 선택했다면?

 

본래 벨기에 국적을 가진 야누자이가 벨기에 협회를 선택했기 때문에 야누자이는 협회 변경을 신청할 일이 없다. 그러나 혹시 만약에 야누자이가 벨기에가 아닌 부모나 조부모의 나라를 선택했다면, 야누자이의 협회 변경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까?


 

규정 8조 3항에서 협회 변경 절차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이 규정에서는 “협회 변경을 하고자 하는 선수는 입증할 만한 서면을 FIFA 사무총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이후 선수지위위원회에서 선수의 협회변경 여부를 결정하며, 절차는 선수지위위원회와 분쟁해결위원회 규정에 따라 이뤄진다. 선수가 협회변경을 신청하면, 그의 요청사항 진행이 다 완료될 때까지 그는 어느 대표팀에서도 뛰지 못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선수지위위원회는 PSC(Player Status Committee), 분쟁해결위원회는 DRC(Dispute Resolution Committee)라고 부르는데, 선수의 협회변경과 관련한 문제는 PSC에서 담당한다. PSC의 결정에 불복하는 경우, 선수는 FIFA 항소위원회에 이의신청을 제기할 수 있다. FIFA 항소위원회의 결정마저 불복하는 경우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이의신청을 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중요한 건 실력이다. 월드컵에서 야누자이를 볼 수 있을까?


 

아무튼 중요한 건 실력이다.

 

FIFA 규정을 토대로 살펴본 바, 부모를 잘 만난 것도 모자라 조부모까지 잘 만난 그는 한 번에 6개의 협회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벨기에 청소년 대표팀에서 뛴 경력도, 올림픽 대표팀에서 뛴 경력도 없기 때문에 협회 변경도 언제나 가능하다. 혹여나 만약에 뛴 경력이 있다 하더라도 뛸 당시에 이중국적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협회 변경이 또 가능하다. 야누자이는 참 행복한 남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건 역시 실력이다. 국적이 여러 개면 뭐하겠는가. ?결국 한 군데에서 인정받는 게 더 중요하다. 그는 협회변경을 시도하지 않고 벨기에에 남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야누자이가 벨기에 유니폼을 입고 우리나라와 월드컵에서 맞서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벨기에를 선택하는 건 그의 몫이지만 결국 월드컵에서 그를 선택하는 건 감독의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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