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에서 대통령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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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에서 대통령까지
  • 최명석
  • 발행 2017.10.12
  • 조회수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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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비유럽인 FIFA 올해의 선수 겸 발롱도르 수상자


최프로's 한 줄

1995년 피파 올해의 선수에 뽑혔던 선수가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직전.

(떠도는 확정설은 현재(10월12일17시) 까진 오피셜은 아니다.)

역대 최고의 아프리칸 축구선수

최초의 비유럽인 FIFA 올해의 선수 겸 발롱도르 수상자

조지웨아


(전체이름: 조지 탈론 매너 오퐁 오스만 웨아, George Tawlon Manneh Oppong Ousman Weah)
생년월일 1966년 10월 1일
국적 라이베리아


"웨아는 놀라운 선수다. 나는 웨아만큼 피치에서 폭발력을 지닌 선수를 본 적이 없다." - 아르센 벵거
"조지 웨아는 내 선수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선수이자 나의 우상이다." - 티에리 앙리

라이베리아의 수도 몬로비아 출신으로 1981년 15세 때 당시 3부 리그 소속 지역 축구 클럽인 영 서바이버스 클래리턴과 계약하며 골키퍼로 축구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골을 넣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게 되면서 공격수로 전향

아프리카에서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사실상 무명인 상태의 조지 웨아를 발탁하여 국제무대로 데려와서 성장시킨 인물은 아르센 벵거였다. 벵거는 아프리카로 직접 가서 조지 웨아의 모습을 수 차례 지켜보았고, 1988년 아르센 벵거 감독이 이끄는 AS 모나코로 이적하였다.

벵거는 웨아에게 "열심히하면 너는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다."고 격려했다. 그리고 진짜 그렇게 되었다.

후에 조지 웨아는 밀란에서 발롱도르를 수상하고 그 공을 벵거에게 돌렸다. 벵거는 자신이 발탁한 선수 중 가장 대단한 선수로 아직도 웨아를 꼽는다.

조지 웨아는 모나코에서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1991년 쿠프 드 프랑스에서 우승, 이듬해에는 팀을 UEFA 컵 위너스컵 결승전으로 이끌었다.
모나코에서 4시즌동안 102경기에 출장해 47골을 기록.

1992년 파리 생제르맹 FC으로 이적. 이적한 뒤 첫시즌인 1992-93 시즌에 쿠프 드 프랑스에서 우승하였고, 1993-94 시즌에는 리그 앙 우승, 1994-95 시즌에는 쿠프 드 프랑스와 쿠프 드 라 리그에서 우승하는 등 파리SG에서 수많은 타이틀을 획득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파리 생제르맹에서 3시즌동안 96경기에 출장해 32골을 기록.

1995년 유럽과 남미 출신이 아닌 대륙 출신이며 아프리카인으로서 처음으로 발롱도르를 수상
같은해 FIFA 올해의 선수상도 수상

3번째의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선수상 수상(1989년, 1994년, 1995년)

1995년 여름 AC 밀란으로 이적.
경이적인 신체 능력을 보여주며 "블랙 다이아몬드"이라고 불렀다.

1996년 9월 8일 베로나 전에서 80m를 질주하여 넣은 골은 그의 클래스를 보여준다. 이 골은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 중 하나로 여겨진다.

밀란에서 2회 리그 우승을 이끌며 5시즌 동안 114경기에 출장해 46골을 기록.

축구선수 출신 대통령이 눈앞!

은퇴 후 내전으로 상처받은 조국 라이베리아를 위해 조지 웨아 기금을 설립하는 등 라이베리아 유니세프 친선 대사로 활동했다.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해 2005년 라이베리아 대통령 선거에 민주변혁회의(CDC) 후보로 출마했으나 패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도전해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대통령으로 당선 직전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시간 10일 투표를 진행했다. 현지사정으로? 발표가 미뤄지고 있다고한다.

라이베리아는 결선투표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투표 결과 1위가 과반 이상의 득표하지 못하면, 득표율 상위 두 후보의 최종 결선 투표가 다음달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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